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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개혁세력의 통합, 정치판을 바꿔라"

 

선거판이란 말이 있다. 정치판, 난장판처럼 보통 '판'이란 말을 갖다 붙이면 긍정 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강하게 배어 나와 입에 담기가 거북스러운 탓에 애써 피하는 말 중에 하나다. 

바로 그 '판'의 한복판 소용돌이에서 수 주일을 있다 빠져나오니 세상살이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개혁국민정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유시민 후보와 함께 고양시 덕양갑 일원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면서 우리 정치현실의 현주소에 대해 다시 자문하게 됐다.

 

25% 안팎의 역대 유례 없는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 우리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소와 비판은 '한 표'를 청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거리에서, 생활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시민들은 "열심히 하겠다" "정말 깨끗하게 하겠다"고 고개 숙이며 말씀드려도 "선거에 나와서는 다 그렇게 말한다" "당선되고 나면 하는 짓이 다 똑같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선거 현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알몸 그대로 보게 된다. 어느 선거에나 단골메뉴인 '토박이' 논쟁, 호남향우회, 영남향우회… 줄줄이 이어지는 지역 연고와 아파트 평수로 표현되는 계층간의 미묘한 대립, 더 많은 예산과 도로를 요구하는 주민의 요구와 한정되어 있는 국가-자치단체 재원 사이에서 언제나 붕 떠있기 마련인 공약들. 복잡하게 얽힌 여러 연줄망과 '한다 하는' 사회세력들이 총출동하는 이 격전장에서는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유권자들의 냉소에 비해 그렇게 밑바닥 승부의 열기는 뜨거웠다.

 

국회의원 단 1석에, 창당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미니정당인 개혁당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라는 것이 민심인 데 선거운동원들의 열정과는 달리 모두들 문을 닫아 건 아파트 밀집구역에선 어디 하소연할 데 조차 없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곤 했다. 꽉 막힌 답답함을 한 번씩 뚫어준 것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자원봉사자들, 지지자들이었다. 자기 스스로 돈을 들이고 생활인으로 쪼개기 힘든 귀한 시간을 바쳐가며 거리에서 율동과 구호를 자청하는 이들을 보면서 피곤에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악수를 받아주는 유권자들의 손은 따뜻해졌다. 문제는 투표율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둔 유권자들이 대부분인 고양시의 특성상 투표가 시작되는 6시부터 출근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렀잖아도 보궐선거라면 낮은 투표율이 뻔한데 거기에 휴일이 아닌 평일. 출근에 목을 매고 사는 보통 서민들이 투표소로 발을 돌릴 리 만무했다. '명예로운 지각하기운동'을 주창해봤지만 선거 당일 한산한 투표소를 바라보면서 조직과 자금, 지역내 인지도에서 열세인 우리 후보의 패배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사상 유례없는 그 낮은 투표율에서도 유시민 후보가 여유있게 승리한 것이다. 조직적인 연고표가 승부를 좌우한다는 보궐선거의 철칙을 깨뜨린 덕양갑 개표결과를 보면서, 나는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치개혁의 큰 강물이 우리 앞에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경쟁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에서 상대 후보는 화려한 국회의원 경험에 20년간 관리해 온 지구당 조직을 자랑하며 승리를 장담했는데 돈으로 움직이는 낡은 지구당 조직 대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자발적 네트워크가 펼친 '즐겁고 유쾌한' 선거운동이 이긴 것은 지난 대선 결과에 이어 이제 더 이상 낡은 '정치판'의 시대가 재연될 수 없다는 확인도장일 것이다.

 

민심은 분명했다. 정치권 전체를 바꾸라는 것이다. 수십 년 지속되어온 지긋지긋한 지역주의 정치질서를 갈아엎고 정책과 노선에 따라 건전하고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정당구도를 만들어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오고가는 고양시 덕양구청 앞마당 한 켠에서, 나는 몸 안을 가득 채우는 늦봄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나무의 자세로 최대한 몸을 펼치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

 

 

 

/이광철(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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