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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서정시의 위기

“요즈음에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나?”가까운 지인이 그렇게 반문했다. 요즈음에는 무슨 책을 읽으며, 혹시 그 독서목록 중에 시집이 들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대하여 돌아오는 반문이었다. 요즘 같은 산문의 시대, 비서정의 시대에 시를 읽는 사람을 기대하다니…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사람들의 성정이 메말라 갈수록 시문학은 서정성의 공급처요, 시대가 한사코 건조하게 변질되어 갈수록 시는 더욱 필요한 수분의 공급처인 것을.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부족하기 쉬운 2%의 무엇인가를 공급해 주는 어떤 것이다. 그 <무엇> 이 바로 사람의 사람다운 성정이요, 그 <어떤> 이 당대에 결핍되기 쉬운 시대정신이다. 서정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성의 눈을 뜨도록 자극함으로써 슬픔을 슬퍼할 줄 알게 하고, 물성화 되어 가는 시대에 올곧은 정신력을 충전시킴으로써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의 가슴에는 따뜻한 강물을, 시대의 머리에는 냉철한 핏줄을 흐르게 하지 않았던가? 시가, 서정시가!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비극적 정감에 가깝다. 드러내놓고 울릴 수 없는 감성의 현을 건드려 훈훈한 성정의 모닥불을 피우게 하거나, 비극적 세계 인식의 중심에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심미적 정신력을 고양시킨다. 그 서정시의 생존이 위기에 처하는 시대는 정상적인 시대가 아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바람직한 시대상은 아니다.

 

분주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이 아니다. 문자를 지닌 매체들이 한사코 정치적 수사와 경제적 당위성을 들어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으로 채근할지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쉼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다. 그 여유롭고 평화로운 온음의 쉼표가 바로 서정시다.

 

서정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치열성을 내재하고 있는 무위(無爲)의 정신과 닮았다. 중국의 지성 왕멍(王蒙)은 무위의 정신에서 시정신을 찾고 있다.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무익(無益)하고, 무효(無效)하고, 무취(無趣)하고, 무료(無聊)한 일, 더구나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 효율의 원칙이요 양생의 원칙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예술이요, 일정한 경지일 뿐만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자존이요, 사회와 역사에 대처하는 인내요 총명이다. 이 무위의 정신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합당한 매체가 바로 서정시다.

 

그 서정의 힘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서정시는 더 이상 나약한 감성이나 근거 없는 지성의 넋두리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시인일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무위의 정신으로 4무(왕멍)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술책을 부리지 않는 무술(無述), 모략하지 않는 무모(無謀), 이름을 좇지 않는 무명(無名), 공을 세우려 안달하지 않는 무공(無功)을 최고 최선으로 삼는 삶, 바로 서정시의 세계다. 현실 속에서 보통사람 모두 시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일 수 없다. 다만 사무(四無)의 정신을 외면하는 시대풍속이 서정시의 생존을 어렵게 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동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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