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과대 포장과 표사유감

상품의 과대 포장이 항상 말썽이다. 상품의 양보다 포장지의 양이 몇 배에 이른다. 자원의 낭비와 엄청난 양의 쓰레기도 문제지만, 비본질적인 요소들로 본질적인 허술함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보여 씁쓸하다. 상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고가품일수록 과대포장의 정도가 심하다고 보면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입구마다 어느 정치인의 의정보고서라는 것이 수북이 쌓여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서’라는 표제에 관심이 있어서 내용을 살펴봤다. A4 규격에 용지는 최고급 광택 아트지요, 색도는 올 컬러로 8장 16쪽에 이르는 화려한 보고서였다. 그득하게 싸인 소위 보고서라는 것이 며칠이 지나도 그 양이 별로 줄어들지 않더니, 어느 날인가 말끔히 치워졌다. 아마 청소하는 분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이미지 시대요 영상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좋은 지질에 막대한 인쇄비를 들여 제작한 의정보고서라면 제목에 걸맞은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할 터인데도 선전문구식 제목과 화려한 전면 컬러사진만 눈에 들어왔다. 보고서라면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해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아직 미진한 부분과 앞으로의 계획 정도는 담겨야 하지 않겠는가? 선량의 서비스 정신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굳이 홍보하고자 한다면 균형 있는 편집으로 형식과 실질을 함께 담을 수도 있으련만, 볼 테면 보고 말테면 말라는 식의 보고는 아니함만 못하지 않은가. 상품을 과대포장해서 쓰레기를 양산하는 상인의 행태보다 조금도 낫지 않은 정치인의 의식과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서의 앞뒤 표지나, 표지의 날개(표지가 안으로 접혀진 부분) 등에 담은 말을 표사(表辭)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오른 표제어가 아닌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 전부터 쓰인 말은 아닌 양 싶다. 이 표사에는 저자가 책에 담은 내용 중에서 독자의 독서 욕구를 자극할 만한 구절이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여 싣는 것이 통례였다. 아니면 책에 함께 담긴 평설이나 발문 중에서 일부분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던 표사가 근래에는 저자의 저서 내용이나 평설이나 발문과는 상관없는 글들이 실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것도 사계의 권위자나 소위 언론에 이름이 잘 팔린 사람들의 이름 석자와 함께 촌평이 실린다. 그 촌평이 어느 지면에 어떤 내용으로 담겨 있었는가를 알려주는 정보는 없다. 이 저자에 대하여 ‘(유명인이) 이렇게 한 마디 했다’는 것이 목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표사의 내용은 당연히 찬사 일변도일 것은 뻔하다.

 

그런 표사가 상업 목적이나 정치인이 노리는 과대선전의 한 방법이라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행위들이 시인-작가들의 저서에 버젓이 실리는 것을 보는 것이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소위 정신력의 무게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존의 힘으로 지탱해야 할 시인-작가들이 유명 인사의 홍보성 몇 마디로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이룬 정신력의 무게를 대변하려는 과대포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대포장은 상품이나 정치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허영의식이 만연하여 자원의 낭비와 쓰레기 양산이라는 무거운 짐에 우리 스스로 질식하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이동희(시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

오피니언활동적 노년(액티브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