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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김치 담그는 집

14개월 갓 지난 아들놈은 힘이 장사다. 딸아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썽을 피우는 대다가 고집도 어찌나 센지 이 녀석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이 쑤실 정도다.

 

오죽하면 애 보느니 밭 일 나간다 했으랴.

 

일주일 내내 손자 녀석에게 시달렸으니 주말에는 편히 쉬시라고 극구 말렸는데 어머니는 또 김치를 담가 보내셨다. 지난주엔 배추김치를, 오늘은 어린 파김치에 깍두기, 생채를 골고루 챙겨 싸 보낸 보자기 꾸러미를 보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김치 담가 주시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 것도 요즈음의 김치 파동 덕이다.

 

어머니는 된장이며 고추장 담그고 김장 하는 일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일로 꼽는다.

 

김치파동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올해에도 김장철은 돌아왔고 전주시도 김장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과 맞물려 올 김장축제는 참여 신청자도 많고 제법 규모도 키울 모양이다.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한번쯤 참여해 직접 김치를 담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김치는 이제 우리 민족고유의 음식을 넘어 세계적인 음식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그 감칠 맛은 기본이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현대인의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여 한국인이 사스 등의 공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김치의 힘이란다.

 

어릴 적 김장은 한바탕 풍성한 잔치였다.

 

마당 한 편을 가득채운 배추는 어린 내가 볼 때 웬만한 동산만 했고, 어머니의 진두지휘로 동네 아줌마들이 한둘은 거들고 나섰다. 그렇게 담그는 김치의 양은 보통 두세 접. 이백포기에서 삼백포기는 기본이었다. 마땅한 저장시설이나 먹을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김치는 중요한 반찬이자 섬유질 섭취원이며 간식거리였다.

 

김치의 종류야 담는 재료에 따라 수없이 많겠지만 배추김치만 가지고도 담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다. 집집마다 고유 양념이 있으니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음식이면서 그 맛의 차이는 실로 다양하다 못해 각양각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재료인 젓갈만 해도 다린 젖국 이외에 새우젓이나 황새기, 돼지고기 등을 별도로 넣어 감칠 맛을 더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지만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집은 물론이고 담글 줄 아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치 파동이후엔 음식의 고장 전주에 사니까 맛있는 김치 집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도 줄을 잇는다.

 

외국의 요리인 스파게티나 초밥을 만드는 것은 무슨 대단한 요리가 인양 자랑스러워하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김치 담글 줄 모르는 건 당연한 듯 애기한다. 김치 담그는 것을 요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전주사람만은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일을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

 

예전 소리 한자 락 정도는 해야 전주사람이라 했듯이 김치 정도는 몇 가지 정도를 직접 담가 맛을 볼 줄 알아야 전주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면 한다.

 

TV교양프로그램에서 일류명사나 스타들이 나와 외국의 요리를 만들어 보이는 일보다 우리의 김치를 맛깔 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자랑 삼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는 기회라 했다. 이번 김치사태를 계기로 우리 김치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김장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준비와 실천을 해야 할 일이다.

 

어머니처럼 틈 날 때마다 김치 떨어질까 고된 몸을 추스르며 자식들에게 김치 담가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선 어머니 김치 담글 때마다 옆에 지켜 앉아 이것저것 거들며 자주 담가 봐야 할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김치 담그는 일을 배우는 것도 지나칠 수 없이 소중한 일이다.

 

집집마다 맛깔스런 김치를 내놓을 수 있고 그런 문화를 이어갈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가 세계에 우뚝 서는 기반이 되리라 확신하다.

 

/김승민(사단법인 마당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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