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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당신에게!

새벽 6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면, 언제나 아침잠이 많아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하던 당신의 어깨가 시린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아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당당하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조심스레 움직이는 손짓 하나하나가 힘겨워 보입니다. 밤을 지새우며 장모님 곁을 지킨 장인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젯밤에도 당신은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평소 당뇨를 지니고 조심스레 살아내던 장모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지도 두 달이 되어갑니다. 반신 마비로 전혀 거동도 못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거동도 하고, 어눌하기는 하지만 제법 농담도 던지는 것이 낙천적인 성격의 장모님 모습입니다.

 

퇴원 날짜를 기다리며 집안도 정리하고 싱크대도 새로 놓고, 집으로 돌아올 어머니와 아버지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열심히도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좋아보였습니다.

 

이제는 재활치료 받으며 열심히 운동하면, 놀러가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겨울 눈 구경이라도 갈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해봤습니다.

 

그러던 몇 일전 청천벽력과 같이 우리에게 들려온 위암말기 판정은 당신 말처럼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도 지독한 악몽을.......

 

하루를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당신에게 “큰 딸이 되어가지고 여러 사람 힘들게 왜 이러냐!” 고 핀잔을 주면서도 나 역시 맥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순네 살,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장모님은 삼남이녀, 다섯 남매를 키워내며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습니다. 이제는 손자 녀석들 재롱 속에서 자식들에게 쏟은 정성 백분의 일이라도 보상받아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당뇨, 뇌경색, 위암말기라는 너무도 견뎌내기 힘든 가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그저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장모님과의 첫 만남의 기억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당신과 주고받던 편지를 몰래 보시고선 학교로 찾아온 당신께선 참 딸 자랑도 많았습니다.

 

“우리 딸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칭찬도 많이 받는 모범생이고, 크면 판검사 시키려고 한다.” 며 행여나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지는 않을지, 큰 딸내미 만나는 녀석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한 것도 많았습니다. 결혼 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계모임 자리에 사위를 불러내 잘생긴? 사위자랑을 펼쳐내 멋쩍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당뇨로 고생하면서 사위에게 씨암탉 한번 챙겨주시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며 용돈이라도 생길라치면 중앙시장 청과물과 어물전 생선으로 맏사위 차를 가득 채우시곤 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청과물상 아주머니와 어물전 아저씨에게 “우리 사위 잘생겼지” 하며 멋쩍은 자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직장생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뒷바라지 힘들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다음에 생활이 나아지면 잘해야지 하며 보낸 시간들 속에서 당신은 저리도 큰 병과 싸우고 계셨나 봅니다. 참으로 야속하고 못된 사위고 자식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견뎌내야 할 아픔이 얼마인지 정말 모릅니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큰딸과 큰사위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아파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감사해야 합니다. 12월 첫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였습니다. 나뭇잎 떨어뜨린 나무들이 겨울 속에서 봄을 준비하듯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게 또 이 겨울을 이겨 내야겠지요!

 

여보! 당신의 아픔까지 사랑합니다.

 

/김승민(사단법인 마당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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