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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어렵고도 곤란한 단어 - 함한희

함한희(전북대 문화인류학)

얼마 전 여행을 하던 중에 새 단어를 하나 알게 되었다. 모르던 말을 알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터인데, 그 반대였다. 오히려 큰일 났구나 할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는 무심코 지나친 분도 있고, 아니면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분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요즈음 휴게소의 화장실은 여느 호텔 못지않게 깨끗하고 화려하다. 그 날 내려서 들린 휴게소는 최근에 전면적인 수리를 하여 다른 곳 보다 더 정갈하였다. 화장실 내부에다가 나무도 심고, 조화도 가져다 놓는 등 세심하게 실내장식을 해 놓았다. 문 앞에는 친절하게도 푯말이 일일이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화식’과 ‘양식’이라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푯말이었다. 그런데 화식이라니. 설마하며 두 곳의 문을 다 열어 보았다. 양식은 의자식 변기 즉 양변기를 말하는 것이고, 화식은 바닥에 붙어있는 것 즉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것을 말하였다. 얼마 전까지는 ‘재래식’이라고 불렀던 것이지만, 그 말의 어감이 나빴던지 화식이라고 바꾸어 놓았다. 화식이란 일본식이라는 뜻인데, 왜 굳이 화식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본 여행 중 공중화장실에서 보았던 표말을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최근 선거를 치루는 동안 내내 들리는 ‘매니페스토’라는 단어 역시 ‘화식’의 용례에서 느끼는 기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여전히 매니페스토의 뜻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쉬운 우리말로 ‘공약실천운동’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그렇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야만 할까.

 

요즈음 정부에서 나오는 각종 정책설명서나 행정기관에서 시행하는 사업내용을 읽노라면, 멘토링, 어메니티, 거버넌스 등등 무척이나 어려운 단어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특히 농촌 어메니티, 농촌아동 멘토링은 우리식의 변소를 ‘화식’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진다. 어떤 단어는 이태리어나 불어에 어원을 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리이스 신화를 알아야만 그 뜻을 이해 할 수 있는 단어도 있다. 정부는 전문가나 지식층만을 상대로 행정을 펴는 곳은 아닌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말을 사용해서 혼란을 주고 있다.

 

이제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뽑혔다. 이들이 선두에 서서 우리고장에서만이라도 쉽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해 본다.

 

/함한희(전북대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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