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2006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밝아오는 새해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쁜 때이지만 이맘때가 되면 매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하장을 보내는 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난 1년 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을 준비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중의 하나입니다. 늘 감사의 마음이 있어도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아니면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께 전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죄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해 한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풍속인 연하장 보내기가 요즘은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 주 연하장을 사기위해 한 서점에 들렀습니다. 받아보실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의 연하장들을 고르면서 도움 받은 많은 분들을 떠올리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연하장을 한 무더기씩 쉽게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겉치레 때문에 연하장을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불쾌감은 연하장을 받는 입장이 될 때에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연하장은 바쁜 현대 생활을 생각할 때 이해하기로 했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이 틀려 있거나, 똑같은 사람으로부터 2장의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썩 좋지 못합니다.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바쁘게 보내야하는 연하장이라면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얄팍한 감사의 마음 전하기는 다만 연하장 보내기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연하장 계산대에서 계산기가 고장이 나서 10분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계산기가 가동되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계산기 뒤에는 1년 동안 아껴주신 고객들께 감사하다는 말이 크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사용되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마음이 담긴 감사와 사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영화제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과 모자라는 글을 넓은 마음으로 읽고 격려해주신 많은 독자여러분들에 이르기까지 한해를 무사히 보내기위해서 너무도 많은 분들께 신세지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두 찾아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아쉽고, 대신 연하장으로 마음을 전하지만 그것도 모두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모두에게 연하장을 보낼 수는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 준비가 진정한 마음을 보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 2007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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