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선(군산대 교수)
6월이 되었다. 87년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된 당시의 시위참가자들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을 ‘기념’할 만큼 우리가 여유로운 상황에 있는 것인지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사회가 더 나은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는 지나간 운동의 성과를 자축하는 데 힘을 쏟을 만큼 민주주의의 과제를 완수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로티는 좌파를 ‘희망의 정파’라고 불렀다. ‘보수’가 낡은 제도와 가치를 최상의 것으로 고수하고자 하는 입장인 반면, ‘진보’는 끊임없이 새로운 제도와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적 입장을 일컫는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제도와 가치는 아직 실현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보의 길을 걷고자 하는 ‘좌파’는 오로지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만약 좌파가 새로운 제도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중단하게 되면 더 이상 진보라고 불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몇 달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지만, 새로운 제도와 가치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운하를 만들겠다거나,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등의 구호는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댔던 개발독재시절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이며, 진보를 자처했던 현 정권의 자화자찬은 그들이 더 이상 새로운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옛날처럼 경제개발에 매진하자는 보수와, 마치 민주주의의 과제가 완성된 듯 자아도취된 짝퉁 진보의 현란한 수사에 눌려 ‘희망의 정파’는 자취를 찾기 힘들다. 비록 군인이 총칼로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주변부의 약자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의 과제를 떠맡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들을 비롯해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혼혈인, 도시빈민, 성적소수자들과 같은 약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이제 ‘기념’되어야 하는 옛것이 되었다. 이 땅에서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옛것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나라 만들기에 대한 진보의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유선(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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