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철(우석대 교수)
필자는 ‘테러’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마다 발칙한 추억 하나가 늘 생각나곤 한다. 필자가 연전에 교환교수로 일년 간 체류한 영국의 버밍험 대학에는 중동 학생들이 꽤 있었다. 중동인들은 무언가 거칠고 험상궂을 것이라는 내 편견과는 달리 이 친구들은 눈망울이 서구인이나 동양인에 비해 큼직큼직해서 도대체 저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의 동족 중에 무지막지한 테러리스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당치않아 보였다.
그날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민간인에게 폭탄테러를 가해서 민간인이 다수 사망했다는 기사가가 종일 BBC를 통해서 보도되던 날이었다. 버밍험을 오가는 시내버스에 중동인 같은 사람이 탑승하면 차장이 승차를 거부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수업 간 휴식 중의 대화는 비무장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테러의 잔학성에 대해서였는데 그때마다 이 학생들의 눈가에 그늘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훔쳐보곤 했다. 그때 ‘빌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팔레스타인 학생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탱크와 전투기 등 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아무 죄없는 민간인을 폭격하고 수천년을 살아온 터전을 침략 받은 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혹시 봤느냐고 가자지구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CNN의 화면이 고작 이스라엘 탱크 앞에서 돌을 던지는 어린 아이들 모습이 아니었냐고.....’ 여기까지도 충분히 당혹스러운데 내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싸우던 너희 나라의 독립전사들도 테러리스트 아니었냐고, 김구 같은 사람을 너희 나라에서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냐고.....’. 나는 그때 일순 할 말을 잃었던 거 같다. 도발적인 질문도 질문이려니와 이 친구가 ‘김구’선생님을 안다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당혹감을 접은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김구 선생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도 서방세계로부터 테러리스트라고 불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독립 운동가들은 절대로 민간인을 인질로 잡거나 살해한 적은 없다’라고..... 이어 빌랄의 반론이 이어졌다 “폭탄테러로 민간인이 다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많은 숫자의 팔레스타인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나는 그때 그의 눈이 젖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당시 이 말이 내 입안에 맴돌았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비무장한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나 그에 대응해 폭탄테러로 민간인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이나 악은 결국 악일뿐이라고....., 더 큰 악도 더 작은 악도 다 똑 같은 악일뿐이라고.”
그의 슬픈 눈빛 때문이었다.
/정동철(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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