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경제만 살리면 되지, 뭐 - 김정수

김정수(전주대교수·연극영화)

요즘 인터넷 최고의 댓글이 있다. 어느 사이트의 어떤 글이건 빠짐없이 매달려 있는 짧은 댓글, 바로 ‘경제만 살리면 되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교통사고 기사에도, 연예인 성형기사에도 있다. ‘성형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식이다. 한마디로 못마땅해 죽겠다는 투다. 대선 결과에 심보가 단단히 뒤틀린 극소수 좌파의 비아냥거림, 소극적 도발이라 지나치기엔 바라볼수록 처연하다.

 

경제도 질은 있을 터. 허나 많은 국민들이 일단 살리고 보자며 손발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죽어나자빠진 경제란 놈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어느 사이 지상최대의 가치, 최고선이 되어버렸다. 정말 죽었던 건지, 외출 했는지, 잠을 자고 있는 건지, 살릴 수나 있는 건지 되돌아볼 겨를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바라보는 불손한 시선을 걷고, 그가 지상최대의 가치에 걸맞은 최고의 적임자라 믿는 일은 이제 대의가 되었다. 하지만 공연예술 관련자로서 끝내 남는 불안 하나는 작년 봄, 공개석상에서 그가 남긴 의미심장한 경제적(?) 발언들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가도 한달에 한번 두번 공연하면 나머진 자유시간이잖아요.” “마파도2는 한물 살짝 가신 분들이 모여 가지고 만든 영화로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돈이 안 들었을 것” 등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일이란, 작업복 입고 무거운 물건 들어올리는 것 따위로 규정된다. 불도저를 운전하거나 작업모 쓰고 먼 곳을 손가락질 하지 않으면 일도 아닌 거다. 한 달에 한 두 번, 아니 일년에 단 한번의 무대를 위해서라도 밀려오는 초조와 긴장을 땀으로 이겨내며, 구상하고 연습하고 온몸을 던져 노력하는 것 따위는 결코 일이 될 수 없다. 또 그렇게 평생을 거쳐 얻어낸 명예는 천박한 대중예술의 자본중심적 시각으로 볼 때, 결코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

 

그렇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예술처럼 무익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없다. 이처럼 노동집약적이고 비생산적인 산업이 없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문화산업이 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긴 하지만, 99%의 순수예술 종사자들은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고통스럽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십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이 말은 집권 무렵 문화예술계를 향해 던진 희망의 메시지였고, 현재의 무대지원사업을 비롯한 각종 지원책의 근간이 되었다. IMF 한파 속에서 예술인들의 어려움도 배려되었고, 공과를 떠나 그나마 예술인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공연물의 대형화와 상업화를 경계하는 시각은 꾸준히 있어왔다. 상업적인 문화산업이 순수예술의 영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봇물 터지듯 가속화될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장사되는 예술만 살아남는 시대, 천박하지만 돈이 되는 예술, 전통문화의 누더기(?)를 벗고 ‘글로벌하고 테크놀로지’하게 개량된 문화가 대접받는 세상, 경제성 없는 민중문화의 건강함은 가고 천박한 귀족 문화가 판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이쯤해서 당선자가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냐고, 날조된 모함이라고 강력히 부인하면 어떨까. ‘예술만 살리면 되지, 뭐’라는 댓글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

 

△김정수 교수(48)는 남원 출신이며,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을 지냈다. 국악뮤지컬‘님이시여, 사랑이시여’오페라'춘향' '논개' 등의 희곡과, '해방기 희곡의 현실인식' '연극의 시대는 갔는가' 평론집이 있다.

 

/김정수(전주대교수·연극영화)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익산동물의약품 규제자유특구 후보 익산, 미래 동물헬스케어산업 선도

문화일반전북과 각별…황석영 소설가 ‘금관문화훈장’ 영예

정부李대통령 지지율 63%…지난주보다 6%p 상승[한국갤럽]

사건·사고김제서 작업 중이던 트랙터에 불⋯인명 피해 없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오지마"…군산대 교직원 58% 이전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