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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희망보다 더 좋은 현실 - 정성록

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생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면 산이나 강을 찾아 머리를 식히거나 혹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풍광과 사람을 만나면서 정리되고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는 동안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원망하고 내 생각에 절대성을 부여하면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탓하는 일도 있다. 한편으로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 눈을 떴을 때, 마술에 걸린 듯 온 세상이 내 의도대로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강산은 그대로다. 어제 봤던 사람이 오늘 다시 보이고 또 내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변한 것이 없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끄떡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불변함은 천하의 진리다. 우주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이다.

 

매일 아침편지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가 잦다. 좋은 글귀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여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에서 보내주는 글이다. 최근엔 소설가 최인호의 산중일기 일부를 보내 주셨다.

 

"당뇨병이 내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하는 열등생에게 매일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처럼 내 게으른 성격을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이 내게 평생을 통해서 먹고 마시는 일에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고 숙제를 내주신 것이다. 일찍이 부처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다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

 

이 편지를 읽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 주위에도 이런저런 병고와 생활의 고통으로 현실을 절망하고 비난하면서 보내는 몇 명의 사람이 있다. 앞으로도 특별히 더 좋아질 징조도 없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희망이 보이면 절망은 없지만, 해결책이 없으니 더 막막한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추위가 풀리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나 인간사는 자연의 이치와는 또 다른 일면이 있어 원칙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겨울을 몇 차례 보냈지만 세월의 봄은 오지 않았다.

 

安居樂業(안거낙업)이라는 말이 있다. 후한(後漢) 시대의 중장통(仲長統)이 지은 창언(昌言) 에 "편안하게 살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하며 자손들을 양성하면 천하가 편안해질 것이다(安居樂業, 長養子孫, 天下晏然)" 라고 하였다. 즉 자신의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삶을 편안하게 여기고 즐기라는 말이다.

 

내가 사는 곳이 불만스럽거나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맘의 여유가 없거나 과분한 욕망, 그리고 너무 사치스럽기 때문이다. 더 좋은 환경과 일거리를 찾아도 눈에 보이는 다른 상대가 있기 때문에 느끼는 불만은 마찬가지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만 보인다. 다들 잘 살고 행복한데 자신만 온갖 고통을 감내하는 듯한 서운함도 생긴다. 그래서 지금 현실을 벗어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신세계를 향해 달아나고 싶은 것이다.

 

구상 시인은 '꽃자리'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바로 지금의 그 자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자리라고 하였다. 내가 만나는 그 사람, 내가 일하는 그 자리, 나와 함께 하는 이웃, 그리고 내 처지와 상황에서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라는 신의 선물이다.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 저는 꽃자리에 앉아 그 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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