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이때 쯤 이면 가을걷이도 끝나고 바쁜 일손을 놓고 한숨 돌리는 시기다. 농가에서는 입동(立冬)을 앞두고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를 묶고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는 등 겨울을 대비한다. 자연의 섭리도 양(陽)에서 음(陰)으로 변하면서 추운 겨울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시기다.
요즘 국내적으로 아주 어려워 미국 발 금융위기가 우리네 안방까지 영향을 끼쳐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는 소리를 한다. 금융위기가 국제적 협력으로 제어된다고 해도 실물경제 위축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경제 한파가 지금의 현실이기에 막연하게 인내하면서 기다리기는 너무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 국민은 어떤 준비를 해야 된단 말인가? 그저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운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준비하는 곳에는 그 힘이 너무 약해진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25장에서는 운명의 여신을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강에 비교하였다. "이 강은 성이 나면 들녘으로 넘쳐흐르고 수목이나 집을 파괴하기도 한다. 강이란 이런 성질을 가졌지만, 그러나 평온할 때 미리 제방이나 둑을 쌓아 단단히 방비를 해 둘 수 있다. 그래서, 그 후 강물이 범람하더라도 맹위를 잃게 된다. 운명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저지할 만한 장애물이 없으면 더욱 그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이렇듯 운명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작용하는 마술적인 힘이 있다.
운명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끝내 생을 마감하는 이웃의 친근한 가장, 모범학생 그리고 유명연예인까지 자살했다는 보도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요소다.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앞을 보면서 준비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 그러니 실패도 줄어들고 절망으로 빠지는 기회도 적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여유에서 생기며, 이는 준비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며 행복이 될 수 있다. 항시 바쁘게 살고 생각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준비할 틈이 없다는 말과, 준비하는 것은 현실의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역설에 지나지 않는다.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이는 가을이 되니 변방의 오랑캐들이 살찌고 날씬한 말을 이끌고 쳐들어오니 미리 대비하자는 경고의 의미가 있다. 흉노족이 언제 침입할지 모르니 중국인들은 가을철이면 미리 경계하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일본인들이 잘못 받아들여 새(塞)를 빼고 추(秋)를 천(天)으로 고쳐 천고마비라는 말로 고쳐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정재도 한글말연구 7호) 언어는 역사성이 있으니까 변하기 마련이지만 원래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가을이 되니 맑고 청명한 하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곧 닥칠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을은 현실이며 겨울은 미래다. 지금이 좋으니까 내일까지 다 좋을 것이라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국가나 사람에게 가장 좋을 때와 안전한 시기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주위의 부러움을 받아 상황이 좋을 때 나락의 길도 있음을 알고, 나쁠 때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자금을 확보하여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최악의 조건을 생각하고 대비하면서 차분하게 대처하는 마음도 병행했으면 한다. 농부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겨울을 준비하듯 생활 자체가 늘 미래를 향하면서 희망을 지니고 살면 현실의 어려움은 극복될 것이고 자연히 앞을 내다보는 혜안(慧眼)이 생기는 것이다.
'安不忘危'(안불망위), 안일할 때 준비를 하는 일은 여유 있고 즐겁다. 그러나 위기의 시기에 대처하는 일은 괴롭다. 문제는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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