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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전통문화의 힘 - 박정룡

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얼마 전 Financial Times지 칼럼(7. 21일, Robin Harding and Jonathan Soble, 'Not made in Japan')에서, 반도체에서는 비교우위를 상실한 일본이 지만 위생도기의 경쟁력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We lost semiconductors but we still keep the toilet bowl.")라는 동경대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의 언급을 본 적이 있다. 이 말은 1917년에 창업하여 화장실용 위생도기 한 가지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TOTO사의 성공을 지칭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자료(정후식, 일본기업의 장수요인 및 시사점, 2008.5.)에 따르면 일본에는 창업 후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老鋪, しにせ]이 3천개를 넘어 전 세계 장수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중 식품이나 요리, 제과, 주류, 약품, 의류 등 전통문화에 기초를 두거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스시(壽司)를 180여 년 동안, 소바(蕎麥)를 540여 년 동안 만들어 온 이즈와 혼케오하리야(本家屋張屋)를 비롯하여 깃코만(간장, 1630년 창업), 도라야(虎屋, 和菓子, 1530년), 사우라(佐浦, 日本酒, 1724년), 류카쿠산(龍角散, 용각산, 1871년), 치소(千總, 기모노, 1555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겟케이칸(月桂冠, 1637년), 키쿠마사무네(菊正宗, 1659년) 등의 주류 제조업체를 비롯하여 17~18세기 또는 19세기에 창업한 수많은 기업들이 오늘날까지 동일한 업종에서 영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들 기업은 최첨단 소재부품 기업과 나란히 일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면서 경제의 성장과 고용의 확대에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의식주와 문화생활을 선도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일본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천년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우리 전라북도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여 지역내 부가가치와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첨단산업 유치를 통한 경제활력 제고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지만 이와 더불어 전통문화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의 하나로 적극 육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 자료에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먹[墨]'의 제조 기술을 발전시켜 '붓펜'을 제조하던 구레다케(吳竹, 1902년 창업)가 고유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카본블랙 기술을 활용한 골프장용 융설제(融雪製)로, 그리고 도로 자동발광표지(自動發光標識)로 사업영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온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한지로 만든 지갑이나 넥타이 등을 전시·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일본 구레다케의 예에서 '먹'에서 '붓펜'까지로의 한 단계 진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향후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정책적인 지원과 지역사회의 관심도 필요하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관련 업계에서도 새로운 제품 개발과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에 힘쓰는 한편 전국은 물론 세계를 대상으로 한 판로의 개척과 고객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소비가 고급화, 다양화되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전통문화를 살린 제품의 앞날은 밝다고 하겠다.

 

/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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