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만 65세가 되자 동사무소에서 노령연금을 신청하라는 통지서가 왔다. 신청서 양식을 보니 꽤 까다로운 내용이 많았다. 자태을 보유하고 있는지, 승용차는 가졌는지, 직업을 있는지, 월 소득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그리고 덧붙인것이 하나 있었다. 귀하의 금융거래 사항을 확인하는데 동의해 달라는 것이었다. 동갑내기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 봤더니 그들도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화제는 그 다음에 이어졌다. 아예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저소득층을 선별해서 지급하는 이 연금 해당자는 우리 주변 친구들 중에는 별로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얼추 짐작해도 맞는 말 같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다음달부터 내 알량한 통장에 연금 8만원씩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당당히 노령연금 수혜자 반열에 든 것이다. 집과 승용차등 자산은 있지만 금융거래 항목에서 드러난 채무(債務)가 커트라인 통과에 일조(?)를 한 덕택인듯했다.
그런데 기분이 야릇했다. 평소 이재(理財)에 둔했던 내가 드디어 사회평균 저소득층으로 떨어지는구나 하는 은근한 무력감이 가슴속을 옥죄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노령연금 수령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들 역시 내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 복지정책의 따뜻한 선의(善意)가 오히려 '받는 자'라는 열등감을 불러 들이는듯한 모순된 감정 말이다.
엊그제 김황식 국무총리가 매월 10만원씩(그동안 2만원이 올랐나보다)주는 노령연금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가진것 없는 노인들을 너무 핍박하는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없는 자'와'있는 자'의 구분이 어떤 기준으로 갈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김총리의 발언은 돈이 많아 굳이 연금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 받는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로 들린다. 지적할수 있는 점을 지적했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재산이 넉넉하고 드러나지 않은 소득도 짭잘한 사람이 의외로 지원 혜택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더구나 김총리의 말대로 필요없다는 노인게에게까지 굳이 연금을 주는 일이 있다면 이는 제도상의 미비점이나 행정 절차상의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이 더 급하다.
학계에서도 선택적인 복지냐, 보편적인 복지냐는 오랜 논란 과제다. 가난한 집아이나 부자집 아이나 똑같이 무료급식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그런 예이다. 마찬가지로 노령연금을 여유있는 노인이나 한 푼이 절실한 노인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현행 방식이 복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제도인지도 숙고해 볼 일이다. 확실한 저소득층이 아니라면 '받는 자'의 보이지 않는 열등감을 '주는 자'의 겸손한 우월감과 소득 배분의 공정성이 이루어 질때 비로소 조화로운 합리(合理)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사회복지의 참 뜻이 구현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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