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본지 논설위원)
얼마전 부안군에서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와 부안'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것으로 죽막동(竹幕洞) 해양제사유적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여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이 모여 변산반도의 해양적 위상, 동아시아 해상교류 등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변산반도에 위치한 죽막동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임효재 동아시아고고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죽막동의 성격을 명쾌하게 규정했다. 즉 죽막동은 한·중·일 삼국을 잇는 제사유적이라는 것, 그리고 AD 3-9세기까지 그런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는 것, 나아가 세계유산으로서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막동 유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가치를 인정받던 차였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 죽막동을 찾은 일본 오이타현 시미즈 무나야키 고고학회장(벳푸대 교수)은 "동아시아 해양제사 유적지 중 남은 것은 죽막동과 일본 오키노시마 2곳 뿐"이라면서 "이곳이 오키노시마보다 10배 이상 크고, 특수한 형태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죽막동의 가치나 중요성에 너무 조용하다"고 지적해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일본 오키노시마 유적은 이미 1952년부터 3차에 걸쳐 발굴, 작은 파편까지 8만 점에 이르는 유물을 추려 국보로 지정했다. 또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기재하는 등 등재 작업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걸음마 수준이다. 일본보다 40년이 늦은 1992년 국립전주박물관이 수성당 뒷편 일부 지역만 발굴, 800여 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후는 거의 방치상태로 두고 있다.
죽막동은 중국의 주산반도 영파(寧波)에서 사단(斜斷)항로를 따라 변산반도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일본 오키노시마로 이어지는 고·중세 해상항로의 주요 기항지이자 피항지였다.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제사의식이 이루어졌고 그 유물들이 죽막동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귀중한 유물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한·중·일 또는 한·일 제사유적을 한데 묶는 방안과 죽막동만을 올리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죽막동만을 올리는 경우 위도 띠뱃놀이, 원당제 등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잠정목록에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수성당 주변에 대한 폭넓은 발굴이 이루어져야 하고, 학문적인 검증이 있어야 한다. 또한 유물전시관을 지어 교육과 함께 대중성 확보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 추진위 등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부안군은 물론 전북도와 정치권, 학계 등을 망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안 주민들이 먼저 죽막동 유적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금 정부나 전북도는 새만금 사업에 온 힘을 쏟고 있어 이와 연계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새만금은 방조제 개통과 더불어 산업단지·관광단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문화적으로 공허한 감이 없지 않다. 이를 채우고 가치를 한층 높이기 위해 죽막동이 중요하다. 죽막동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면 새만금의 가치가 한결 높아질 것이다. 새만금 시대, 죽막동을 팔아보면 어떨까.
/ 조상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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