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멈춰선 버스와 '통큰' 마트를 생각한다

이재규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 대표)

버스를 타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중년 세대가 많을 것이다. 생활이 광역화하고 시간이 돈인 세상이 되면서 경제적 여유와 상관없이 자가용을 가지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특히 지역에서 버스는 노인층과 청소년 등 경제적 약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만일 목소리가 큰 중장년 세대가 버스 파업의 불편함을 날마다 몸으로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면 버스 사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압력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교통약자의 불편함이 너무 큰데도 사태 해결이 지연되는 것에는 이같은 정황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 보장까지는 논의하지 않더라도 버스운행은 이제 사적 이윤에 기초한 기업활동의 영역 보다는 공공영역의 서비스로 전환을 적극 모색해야할 시점에 있다. 공적 자금에 의한 보상이 아니고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면서도 일부 관리층이 과대한 보상을 받고 실제적인 운송종사자들의 처우는 바닥이라면 그런 수준의 기업윤리에 더 이상 눈먼돈을 퍼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눈앞의 파업사태 해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차제에 버스업계의 구조적 문제와 공영화를 포함한 교통정책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깊이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한두달 불편의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는 길일 것이다.

 

버스 파업의 한편으로 치킨, 넷북, 갈비로 이어지는 통큰 시리즈 가격파괴 마케팅이 해를 넘겨가며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까지 가세한 이 논란에서 대형유통기업은 소비자 선택권을 내세운다. 싸게, 다양한 물건을 편리하게 살 수 있으면 됐지 않은가. 경쟁과 기업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강자가 일정 독식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하는 논리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계산해본다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경우가 딱 이런 경우다. 대형유통기업은 자본의 힘과 물류시설의 선진화로 다양한 품목 확보와 매입가격에서 동네상권과는 한참 우위에 서있다. 그렇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한두 미끼상품을 내세워 소매 시장을 평정한 후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시장을 농락한다. 서민들 삶터의 몰락은 지역경제의 침체와 고용불안 및 사회양극화 심화라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 대가로 우리는 오천원짜리 통닭 한 마리를 손에 들게 되는 셈이다. 우선 눈앞의 작은 이익이 자기가 딛고 사는 공동체의 발밑을 허문다. 동네 상권이 무너진 곳에서 SSM의 간판만 휘황찬란하다. 이것을 개별 소비자가 대응하기에는 어렵다. 버스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고 정치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구랍 23일부터 전주이마트 앞에서는 조지훈 전주시의회 의장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대형할인점의 영업시간 제한, 월 3회 휴무로 대형유통업체와 동네상권이 상생하자는 것이다. 박수를 보낸다. 정치가 설 자리가 그곳 아니겠는가.

 

물론 한계는 있다. 그러나 가능한 저지선을 쳐보자는 노력에 공감한다. 이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등 입법적 보완을 거쳐서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카드수수료 인하와 대형마트 규제, 고용보험도입 등은 영세자영업자들이 내건 최소한의 요구이다. 프렌차이즈 본사의 횡포 등 여러 겹의 고통을 겪고 있는 중소상공인을 제대로 살려야 지역공동체의 활력이 생기고 지역발전의 다음 단계를 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버스와 마트, 모두 평범한 시민이 매일 경험하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거대한 정치경제 담론을 들먹일 것도 없이 여기에도 권력과 금권, 날것의 경쟁만을 우선시하는 낡은 시스템이 의연히 작동한다. 그냥 편승하지 말자. 가능한 대안을 찾자.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웃의 문제에 눈을 돌리자. 손을 거들자. 늦은 겨울밤 오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동태가 되어 돌아온 고1 아들녀석을 껴안으며 든 생각이다.

 

*이재규 대표는 전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전북CBS 진행자, 시민행동21 대표 등 지역 시민사회에서 오래 일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6·15남측위원회 부대변인을 맡고 있다. 또 2012년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전환기로 보고 정치혁신과 정책대안을 연구하는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 이재규 (희망과 대안 전북포럼 대표)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안성덕 시인의 ‘풍경’] 모래톱이 자라는 달

전북현대[CHAMP10N DAY] ④미리보는 전북현대 클럽 뮤지엄

사건·사고경찰, ‘전 주지 횡령 의혹’ 금산사 압수수색

정치일반‘이춘석 빈 자리’ 민주당 익산갑 위원장 누가 될까

경제일반"전북 농수축산물 다 모였다"… 도농 상생 한마당 '신토불이 대잔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