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군산대 교수)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방방곡곡에서 화사한 봄꽃과 더불어 축제가 한창이다. 봄날의 산하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는데 그에 더하여 여기저기서 무슨 축제라 이름 붙여 다양한 즐길거리로 우리를 유혹하니 여간내기인들 어찌 행락을 주저할까. 난장이 벌어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봄나물과 싱싱한 해산물을 상상만 해도 우리는 벌써 그 곳에 가 있다. 각 지역은 관광산업의 일환으로 축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축제는 어지간한 산업 못지않은 소득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 축제가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신 또는 자연에 올리는 제사는 반드시 놀이를 동반하고, 그 놀이를 통하여 인간은 신과의 합일을 경험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 고대사회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는 반드시 춤과 노래가 수반되었다. 아리랑의 원무도 기실은 제사의식이다.
엘리엇(T. S. Eliot)이 '황무지'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한 것도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기원하는 곡물제의(穀物祭儀)가 그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또한 만월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고자한 원시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축제 '마츠리'도 제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물론 요즘 들어 제사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제사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식이 변질되고 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신과 제사는 인간의 의식에서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무의식에서 신화는 여전히 살아있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많은 상징과 기호가 신화와 관련되어 있음을 융(Carl Jung)은 잘 증명한 바 있다.
각설하고 축제의 본질은 제사다. 축제가 돈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축제가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놀고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 축제를 통하여 '놀이 참가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없다. 제대로 된 축제라면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제사기능이 부가되어야 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를 가보라. 남강을 유유히 떠가는 형형색색의 등에는 각 사람의 소원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유등의 원형은 '위도 띠뱃놀이'이다. 전북은 기막힌 축제의 모티브를 보유했음에도 현대화에 실패했다.
1980년인가 필자가 대학 2학년 때쯤이었나. 내가 다닌 대학의 상징이 용이었는데 대학축제가 예나 지금이나 그저 먹고 마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전국에서 용을 테마로 하는 민속을 뒤졌다. 그래서 찾은 것이 '김제 벽골제의 쌍용놀이'였다. 그 해 가을 대학축제 때에 필자는 거대한 용 2마리를 만들어 싸우는 장엄한 무대를 대운동장에서 연출했다. 동원된 학생만 500 명이 넘었다. 사라질 뻔 했던 쌍용놀이는 그 후 벽골제에서 재현되었고 지금은 벽골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놀이 또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제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칠 전 군산에서 '새만금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기간 내내 시끌벅적했지만 마치 영혼이 없는 허수아비와 춤추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바라고 축제를 열었는 지 알 수 없었다. 민중의 꿈과 그 꿈을 실현해 줄 전능자와 꿈을 비는 행위가 축제의 모티브가 되어야 한다. 축제를 기획하는 분들에게 권한다. 문화인류학에 대한 깊은 소양은 차치하고라도 재미삼아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라도 한번 읽어보시라.
/ 최연성(군산대 교수)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