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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새벽

이세재(시인)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 숲 사이로 지고 / 높은 벽 밑동아리에 붙어서 / 밤새워 울고 난 새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 / 밤새 울고 난 새벽…….'

 

가수 '시인과 촌장'은 새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높고 높은 벽을 넘지 못해 울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 벽이 사랑의 벽이었건 혁명의 벽이었건 이제는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밤새 울고 난 새벽'이라는 말에는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인 아픔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은 인간 모두를 한 줄로 묶어서 끌고 가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의 사슬에 묶여 새벽이 오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만 한다. 아픔을 더 이상 아파할 수 없는 새벽은 그래서 절망의 순간이다.

 

이렇게 넘을 수 없는 벽 아래서 울다가 일어서야만 했던 절망의 새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치 호루라기소리와 비명소리 속에서 신새벽 뒷골목 나무판자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썼던 김지하의 시처럼, 또는 어린 아들을 새벽차로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아침 눈길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이청준의 소설처럼, 그런가하면 이 밤이 새면 새벽 먼 길을 떠나갈 사람이여 꼬마인형을 가슴에 안고 기다리겠노라는 최진희의 노래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밤을 지새우곤 그 눈물을 숨기며 새벽을 맞이한다.

 

역설적이게도 새날을 여는 희망의 새벽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절망을 안고 있다. 이것은 절망이 희망을 잉태한다는 것일까, 희망의 끝이 절망이라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논할 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경계한다. 과거가 현재를 위해 존재했고 현재는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매 순간의 삶은 그 자체로서 가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창문이 밝아오는 절망과,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새날에 대한 기대를 함께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절망과 희망의 세대를 인위적으로 단절시키거나 연결시키려는 억지가 개입되면 닭목을 비틀어도 온다는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

 

요즘의 새벽 세대들은 이기적 욕망과 환락으로 날을 새운다. 그들도 언젠가는 절망하는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한때 이념과 사상으로 하룻밤의 벽을 쌓고 그 벽을 넘지 못한 눈물이 식기 전에 새벽을 맞이한 세대들의 절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이념과 사상을 견딘 후 안개가 걷히는 산골 새벽의 서늘하다 못해 슬퍼지리만큼 맑은 공기를 안다. 그들도 한때는 이념과 사상으로 이 도시를 물들였으나 지금은 그들의 서늘한 새벽 공기로 우리는 숨을 쉰다. 욕망과 환락의 새벽세대들이여!

 

*이세재 시인은 임실 출신으로 전주 우석고 교감으로 재직중이다. 199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같은 해 시문학지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뻐꾸기를 사랑한 나무」가 있다.

 

/ 이세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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