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한명숙 대표는 공천혁명을 이뤄내겠다고 천명했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걸 보면 혁명은 커녕 개혁 축에도 끼이지 못하는 것 같다. 공천원칙과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어느 선거구는 4배수, 어느 선거구는 2배수로 압축하고 또 다른 선거구는 필터링 기능도 하지 않고 전원 여론조사에 맡겨버리고 있다. 이런 판이니 고무줄 공천, 무원칙 공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역 물갈이를 요구하는 국민 기대는 하늘을 찌를듯 한데 지금까지 세차례 발표한 153개 선거구중 현역이 탈락한 곳은 하나도 없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나는 원칙과 기준을 운용하는 태도다. 원칙을 제시했으면 예외 없이 적용해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탈락자들의 불만도 없다. 그런데 이 원칙이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지붕 세가족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 민주통합당에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세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공심위 결정에 세 세력의 이른바 리모컨공천이 작동하고 있다. 당초 그린 그림이 일그러질 수 밖에 없다.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지도부와 갈등을 겪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공천시스템을 복잡한 사거리 교통신호시스템에 비유했다. 힘 있는 사람의 수신호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원칙과 기준에 따른 시스템공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차는 세우고 검은 세단이라고 해서 통과시킨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민주당은 사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했다. 전북지역에서 조차 '민주당도 이젠 회초리 좀 맞아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20%대에 머물렀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보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연말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이 통합되면서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지도부 경선 때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리막길이다. 국민 눈높이의 공천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통합당이 정신을 차리려면 회초리 좀 더 맞아야 한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자만심에 빠져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비판을 겸허히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심은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중국 주(周)나라 유학자인 순자(荀子)는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때로는 배를 엎어 버리기도 하는데 정치 리더들이 정치를 잘못 하면 갈아 엎을 수 있다는 걸 빗댄 표현이다. 2300여년 전의 정치철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지금까지 공천은 영남과 서울·인천 등 수도권, 강원·충청 일부 지역에서 확정됐다. 문제는 호남지역이다. 신경민 대변인은 "기대해도 좋다.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호남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야 옳다. 공천이 곧 당선이 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지금부터라도 좀 화끈하게 국민 눈높이에서 공천을 했으면 한다.
"정치혁신을 원하는 국민 염원을 잊어선 안된다.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고 집권하더라도 좋은 정치 할 수 없다."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공천해 달라." 강철규 위원장의 핀잔에 한명숙 대표의 화답이다. 기대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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