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진 전주대 행정학과 교수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 결정됨에 따라 전주·완주 통합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늘 논란의 대상이던 두 지역의 통합은 지난 4월 전주시장과 완주군수가 통합 합의문에 서명을 한 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번엔 어떤 식이든 합리적인 결말이 도출되기를 바라는 도민들은 일단 두 단체장의 결단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통합에 대한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작 두 지역의 통합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행정의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통합으로 바뀔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통합도시의 새로운 미래발전에 관한 청사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조건 합치는 것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은 마산·창원과 같은 다른 시군 통합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통합이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은 멀리 유럽의 동서독 통합결과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은 통일을 이룬지 22년째를 맞았지만 아직도 급작스런 통일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특히 동독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 한 조사에 의하면 64%의 구동독인이 자신을 서독인보다 이류 주민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이는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두 지역이 축적한 성과물을 통합해 새로운 창조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의 부재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이다.
동서독 통합으로 사라져버린 아쉬운 정책으로 구동독의 '세로 시스템'이라는 자원 재활용제도와 '생태적 절약경제(ecology of economic scarcity)'라는 발전 모델이 자주 거론되었다. 당시 동독은 사회경제체제 내에서 자원의 순환구조를 생태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개념을 도입해 자원 이용의 효율성과 재활용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통일 후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한 서독의 글로벌 산업정책에 의해 이러한 정책은 궁핍한 사회주의의 낡은 제도쯤으로 취급되며 사장되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랫동안 심각한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던 독일이 2000년대 초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공식 채택한 정책이 바로 자원이용의 효율화와 생태적 발전전략이었다. 독일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자원 효율성을 유지하고 세계경제위기 속에서도 견고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재생에너지와 고효율성에 바탕을 둔 산업체제의 지속 가능한 재편이 거둔 성과이다. 이처럼 독일이 통합 당시에는 간과했던 동독식 생태적 발전전략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도시가 커짐으로써 얻게 될 경제효과는 물론 막대할 것이다. 특히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완주군의 지리적 여건을 볼 때, 그리고 근래 새로운 발전모델로 논의되고 있는 자연 순환형 산업발전의 조건을 두 지역이 상호보완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통합에 대한 기대를 해보기에 충분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통합 후 건설될 새 도시의 발전모델을 미래사회의 방향에 맞게 그려내고, 이를 통해 주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데에 있다. 도는 올 연말까지 전주완주 통합의 밑그림을 제시하기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고 한다. 부디 두 지역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미래발전의 공간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임 교수는 베를린자유대 정치학박사이며 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주대 사회과학대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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