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트라우마와 정신 건강

▲ 정영철 전북대 의대 교수
트라우마와 힐링이 요즘 매스컴에서 자주 나온다. 트라우마란 한 개인이 대처하거나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정도의 경험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적인 스트레스와는 다르다. 여기에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 재난에서부터 고용/인종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적인 것 그리고 가정 폭력, 따돌림, 언어 폭력, 신체적/성적 학대 등과 같은 개인 심리적인 것이 있다. 어떤 형태의 트라우마든 그것은 장기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을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즉 처음 겪은 것과 비슷한 형태만 봐도 놀라게 된다는 것으로 트라우마의 영향이 크고 오래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관계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예측하지 못했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무시, 좌절, 배신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마음상처도 트라우마로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어떤 얼굴과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관계 트라우마를 받으면 그와 비슷한 외모나 성격을 갖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전이라 하며 인지심리학에서는 암묵기억에 의한 영향, 그리고 불교에서의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라고 한다.

 

그런데 왜 트라우마가 이렇게 오래 영향을 미치는 걸까? 대부분의 이유는 사건 자체가 전혀 예기치 못한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부정하며 거부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왜?'라고 자꾸 생각하게 되고 되씹으면서 정신적 소모가 일어나게 된다. 다른 경우는 그 스트레스가 정도가 한 개인의 존재감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클 때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것은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은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위협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협감은 경계심을 작동하게 만드는데 이 경계심은 본능적으로 한 개인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동장치이기 때문에 쉽게 둔감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이나 사람에 노출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하고 불안 수치가 증가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관련 꿈을 꾸기도 하고 상대방을 믿지 못하거나 피해의식이 커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첫째는 마음의 한 칸막이에 트라우마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고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때까지 분리시켜놔야만 다른 생활에 영향을 덜 받게 된다. 칸막이가 견고하고 튼튼할수록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한 칸짜리인 것보다 여러 칸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부자인 것과 같은 이치이며 이것을 마음의 칸막이 이론이라고 한다. 둘째는 좋은 의미를 찾는 것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마법의 주문은 아름다운 이유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이유가 찾아지면 이해가 되고 막혔던 마음이 터지고 영혼이 치유될 수 있다는 뜻 같다. 역경 속에서도 좋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자아 탄력성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러한 특징들이 작용할 때 외상후 성장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간절한 마음이다. 좋은 의미가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뭔가를 진실로 바라고 희망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새벽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기 전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를 꼭 물어보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는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찾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되기도 하고 숨기고 싶은 흉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문화일반전북과 각별…황석영 소설가 ‘금관문화훈장’ 영예

정부李대통령 지지율 63%…지난주보다 6%p 상승[한국갤럽]

사건·사고김제서 작업 중이던 트랙터에 불⋯인명 피해 없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오지마"…군산대 교직원 58% 이전 반대

정치일반울산 발전소 붕괴 매몰자 1명 사망…다른 1명 사망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