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등교를 추진할 명분과 근거는 충분하다. 청소년기에는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어른보다 2시간 늦게 분비되는 등 수면패턴이 달라 뇌가 잠에서 깨는 시간은 오전 8시 이후라고 한다. 또 충분한 잠은 장기적인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잠이 부족하면 짜증이 늘고 자살이나 자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9시 등교 지지 여부가 이 엄중한 교육의제의 핵심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잠잘 권리’를 보장하고,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아침을 돌려주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 의견은 대체로 명분보다는 현실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산적한 문제, 부담은 고스란히 학교로
출근 뒤 집에 남아 있는 아이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학교에 보내야 하는 초등 맞벌이 학부모의 어려움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취약계층인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의 등교시간은 생체리듬과 급식시간의 문제까지 연동된다. 조기등교 학생들을 위한 도서실 등 학교시설 개방도 시설과 인력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등교 전 PC방 출입, 불법 개인과외 증가 우려, 하교시간과 급식시간이 늦춰지는 문제, 교사들의 부담 가중과 중·고 급식소가 하나인 사립학교의 급식시간 조정문제 등도 해결이 쉽지 않은 지점이 있다. 모두 교육감과 교육청 나서서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설득하면서 꼼꼼히 점검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학교는 지금 혼란스럽다. 가치지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고, 문제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도 충분하지 않다. 10월부터 등교를 30분 늦추라는 도교육청의 지침마저, 공문으로 전달되기 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을 정도이다. 도교육청은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홍보, 보완대책 마련 계획을 밝혔지만, 냉정히 말하면 등교시간을 어느 정도 늦추면 좋겠냐는 설문조사 한 번 있었을 뿐이다.
인심은 교육감이 쓰고, 책임은 학교장이 지고, 부담은 학교와 학생, 학부모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 형국이다. 교육감은 명분 있는 공약을 내세워 실행에 옮기고 있으니 모양새가 좋다. 마치 우아한 백조의 자태 이면에는 수면 아래 쉼 없는 발버둥이 있는 모습과 같다. 교육감은 우아하지만 학교는 정신없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학생과 학교가 행복하고 우아하기 위해 교육감이 발버둥치는 게 맞다.
전북교육청의 9시 등교 TV광고도 우아하지만 공허하다 느꼈다. 슬로건이 “아침이 행복하면, 인생이 행복해진다.”이다.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하는 등 시간과 돈을 적잖이 들였다. 홍보도 중요하지만 맥을 정확히 짚은 것 같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9시 등교를 지지하면서도 불안한 구석이 있는 것은 ‘아침이 행복하면, 인생이 행복’해짐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위한 이행과정과 구체적 실행계획과 준비가 부족하다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발버둥치는 교육감을 기대한다
오래 전, ‘밥차’를 앞세운 TV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0교시를 폐지하자는 사회적 화두가 열풍처럼 휩쓸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0교시가 부활하는 등 원점 회귀한 바 있음을 교훈 삼아야 한다. 9시 등교도 구체적인 현실과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담아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교육감과 교육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9시 등교는 어느 교육감이 공약으로 한 번 써먹고 버려도 되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가져올 중대한 사안이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파생되는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교육감이 발버둥치는 만큼 아이들의 아침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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