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두고 각계 인사들은 ‘거목’ ‘큰 별’ ‘영웅’ 등으로 평가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을 한목소리로 치켜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평가자에 따라 그 어감에는 차이가 난다. 김무성 대표는 ‘불세출의 영웅’으로까지 높인 반면, 박원순 시장은 ‘큰 지도자’ 로 담담하게 묘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열렸던 말레이시아에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의례적 메시지에 그쳤다. 어제 빈소를 찾아서도 달리 수사를 붙이지 않았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다양한 함의가 있다. 못 믿을 말이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정치인의 말이 던지는 무게나 파장이 크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언론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겼던 말들을 어록으로 소개했다. 특히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김 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말이자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대도무문’이란 사자성어를 즐겨 쓰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기념품인 대통령 시계에도 ‘대도무문’의 문구가 들어갈 정도였다. 실제 정치사의 큰 흐름에서 보더라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좌우명을 실천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이제 스스로 ‘대도무문’의 정치를 하고 있는지 겸허히 돌아볼 때다. 김 전 대통령은 막바지 생전에 평소 쓰지 않던 ‘통합’(統合)과 ‘화합’(和合)을 필담으로 남겼다 한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현재 꼬여있는 민생법안·역사교과서·노동문제 등을 두고도 김 전 대통령과 연결시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전인수식 해석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만 ‘대도’라고 우긴다면 ‘문’도 없다. 김원용 논설위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