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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구걸하는 지자체, 생색내는 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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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의도다. 봄부터 중앙부처를 들락거렸던 지자체장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국회로 향하고 있다. 내년도 국가예산안이 중앙부처를 떠나 국회 심의단계로 옮겨지면서다. 전국의 광역·기초단체장들이 예산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회 예결위원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 각 지자체에서는 단체장의 상경활동을 나열하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단체장이 지역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국가예산 발품행정, 총력전’으로 포장된다.

이 같은 예산활동 과정을 그들은 ‘건의’, ‘설득’, ‘요구’, ‘호소’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구걸’에 가깝다. 예산을 편성하는 중앙부처나 그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예산철이면 전국의 광역·기초 지자체장들이 날마다 찾아와 문 앞에 줄을 서니 일일이 다 만나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간부들과 함께 서울로 간 단체장들이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대신 실무 사무관과 의원 보좌관을 붙잡고, 준비해간 자료를 들이밀면서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순례행렬처럼 찾아와 읍소하는 단체장들을 맞아 ‘갑’의 위치를 누리는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은 이런 상황이 귀찮을지 몰라도 싫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한 지자체장들의 ‘상경 러시’는 이제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그리고 연말이면 단체장들은 어김없이 ‘국비 따오기’의 성과를 내놓으며, 떠들썩하게 로비능력을 자랑한다. 행여 이런 러시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무능한 단체장’, ‘일 안하는 단체장’으로 찍힐 게 분명하다.

중앙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미끼로 지방정부를 통제하려 하니, 치열한 공모경쟁에 내던져진 지자체는 종속적 위치를 자처할 수밖에 없다. 취약한 지방재정과 중앙정부 중심의 권한구조, 중앙정부의 공모사업 중심 예산 배분, 그리고 선출직 지자체장의 ‘단기 성과’ 위주 행정이 만들어낸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그렇게 지자체는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지방정부는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할 능력을 잃었다. 정부와 국회에만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기업 앞에서도 슈퍼 을이 되어야 한다. 투자유치를 위해 보조금과 부지 제공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며 현란한 구애의 춤을 춘다.

며칠 전 고창에서 열린 삼성전자 물류센터 착공식에는 도지사와 군수를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과 정치인, 기관·사회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해 마치 대규모 최첨단 산업시설을 유치한 것처럼 의미를 부풀렸다. 또 공모를 통해 추진된 제2중앙경찰학교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와 남원시의 모습에서도 지자체의 서글픈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얼마나 받아왔느냐’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고, 지자체장의 자랑거리이자 임무가 되는 현재의 구도에서 지방의 품격, 진정한 지방자치는 기대할 수 없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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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구걸행정 #국비확보 #공모경쟁 #지방자치
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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