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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 김진 경희대 객원교수, 전북애향운동본부 이사

인생을 기다림이라고 표현한 글들은 많다. 대표적으로 사무엘 베케트는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했다. 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250만부 이상 팔리자, ‘고도’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그래서 베케트에게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고도가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 작가조차도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자, 저마다 나름의 추측을 쏟아냈다. 고도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등등.

 

'영혼없는 약속'마저 준비하지 못해

 

그랬다. 사람들에게 고도는 자신이 소원하며 기다리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고도는 무엇일까? 아마 4·13 총선을 통해서 좋은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갖기에는 정치판이 너무 난잡했다. 이름만 바뀐 새 정당, 공천 못 받으면 떠나는 철새들, 그리고 친청과 반청이 난무했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들이 벌인 아수라판이 된 것이다. 오죽하면 공천장 싸움으로 이당 저당 떠돌다가 공약조차 챙길 틈이 없었다니 말이다. 이는 금배지에 눈이 먼 후보들이, 공약을 보고 선택해야 할 유권자들의 눈마저 가려 버린 것이나 같다. 그러니 눈먼 후보들과 눈을 가린 유권자가 치르는 ‘깜깜이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이지 실망이란 표현으로 부족한 이런 정치판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정치판을 바꿔야만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물론 열쇠는 유권자가 쥐고 있지만 자물통이 여러 개 인데다 불량품까지 섞여 있다 보니, 희망이 담긴 자물통을 찾기가 어렵다. 허니 선거를 통한 희망 찾기는 물 건너가고 유권자들은 지친 것이다. 이젠 정치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화두 자체가 식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식상하더라도 정치를 포기해선 안 된다. 유권자의 권리라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우리 삶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56만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짠한 눈길로 지켜봐야 하는 100만명의 부모들. 그리고 평균 월수입이 70만원 밖에 되지 않는 560만명의 자영업자들과 1600만명이 넘는 봉급생활자들, 거기에 700만명의 전업주부들까지. 모든 국민의 삶이 정치에 걸려있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정치는 소비요, 경제는 공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정치가 잘 못되면 국민생활은 찌들게 마련이다. 가계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살림을 잘못하면 집안이 어려운 것과 같은 얘기다. 따라서 절대 좋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좋은 공약 말고 좋은 사람 뽑아보자

 

하지만 금배지 달려고 나선 사람들은 모두가 말도 잘하고, 경력도 좋다. 그래서 매번 그들의 약속에 속는 것이다. 해서 이제는 좋은 공약 말고, 좋은 사람을 뽑아 보자. 입에 발린 약속들을 걸어놓고 못 지키는 사람보다는 청년실업 부모들의 짠한 마음이나, 알바생만큼도 못 버는 자영업자들의 애환을 함께 아파해 줄 수 있는 착한 정치인을 뽑아보자는 것이다. 선거판에서 그런 착한 정치인을 만나기가 쉽진 않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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