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행사의 우월감 보다는 / 모든 고객에 지원 못해 송구 / 더 좋은 서비스 제공 하고 파
마이너스 통장은 미리 신용대출 한도를 설정해놓고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통장이다. 변변치 않은 월급으로 곡예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직장인에겐 크게 유용하지만, 해소불능의 마이너스 잔고는 영원한 번뇌거리이다. 그런데 권력에도 같은 통장이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필자는 가끔 지인들로부터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민망하다. 마치 빚내서 집 한 채 달랑 보유한 ‘하우스 푸어’가 부동산 재벌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내 직책의 권력 무관함을 아무리 해명해도 잘 믿지 않는다. 경제통상진흥원장직을 대단한 관직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나 보다.
경진원은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육성을 위해 제반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주로 도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되기에 ‘도 출연기관’이라 불린다.
혹여 경진원을 돈 있고 ‘백’ 있는 기관이라 여기는 분이 있다면, 한 마디로 잘못 아셨다. 먼저 돈부터 보자. 결산서를 보면 2016년의 경우 2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했으니 돈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돈은 우리 돈이 아닌 도와 국가의 재정이다. 모두 국민의 혈세인 것이다. 이 돈으로 수익사업은 할 수 없고,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주어진 용처에 남김없이 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무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수백억대를 굴리는 것 같아 보여도 잔고 제로의 살림이다. 버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이 주 임무니, 숙명적으로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족속이다.
‘백’은 더 하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수혜대상을 선정, 지원하는 것은 절대로 권력이 아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다수 기업을 지원하다 보니 일부 탈락기업이 생기는 건 불행한 일이지만 불가피하다.
그 과정을 경진원이 좌지우지한다고 여긴다면 완전 오해다. 법령과 기준에 따라 행해질 뿐이며, 오히려 개별 사정이 배제된 기계적 집행의 폐해가 걱정될 만큼 재량이 없다.
이는 순전한 서비스 행정이며, 우리에게 남는 것은 0의 잔고와 탈락기업에 대한 송구함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권한행사의 우월감 보다는 모든 고객을 지원치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주 느낀다. 더 많은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픈 타는 목마름과 함께.
그러면 혹자는 되물을 것이다. 당신이 행사하는 인사권은 뭐냐고? 이는 기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내부적 경영도구다. 권력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기관장에게 인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두통의 근원이다.
TV를 보면 정당의 목적을 집권이라고 단언하는 정치인들이 많던데 솔직히 듣기 싫다. 그래서는 통합보다 투쟁 일변도로 간다. 정당법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목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궁극은 국리민복인 것이다.
사람됨보다 권력의지로 정치역량을 점수매기는 것도 마뜩찮다. ‘스포츠=메달, 기업=돈’으로 동일시하는 사고와 뭐가 다른가? 정권, 메달, 돈은 목표가 될지언정 목적이 아니다.
최근 가맹사업, 제약사, 군 공관 등에서 빈발하는 갑질 논란은 권력의 개념과 사용법의 대변혁을 요구하는 시대의 경종이다.
단언컨대, 경진원은 서비스 기관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봉사의무와 그에 따른 무한책임뿐. 나의 서랍에 마이너스 급여 통장이 있듯, 마음속엔 마이너스 권력 통장이 있다. 의무와 책임만 잔고로 남아있기에 더 값진 통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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