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노동하지 않아도 기본소득 등 사회적 안전망 잘 구축돼 여유있게 살기를
경남 하동에는 매암다원이라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찻집이 있다. 삼천 원만 내면 주인 없는 조그만 다원에서 큰 창 너머 널따란 차밭을 보며 맛있는 황차와 녹차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주중이며 주말이며 일에 파묻혀 지내던 나는 올여름 삼 일간 하동에 방문하여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찻집에 나가서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 후 생기를 되찾아 돌아오면서, 쉼을 얻기 위해 일을 끊고 떠날 용기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용기만으로는 쉼을 얻지 못하는 주변의 많은 분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에 젖었다.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취업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국가의 평균보다 347시간 많다. 이 수치로만 본다면 1년에 두 달 정도 더 일하는 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로는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에서 발표한 역학연구들을 보면 장시간 근로 시에 심장질환이 1.5에서 2배 가까이 더 발생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표한 연구에서는 하루 9에서 12시간 근로에도 뇌출혈 위험도는 38%나 증가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분들이 집배 노동자들이다. 집배 노조 위원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은 정해진 9시간의 근무시간보다 2~3시간 초과근무하는 날이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집배 노동자의 심박수를 측정해 보았더니 일하는 내내 분당 130회를 웃돌았다고 한다. 과로에 둘러싸여 건강에 항시 적신호가 켜져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 전북네트워크는 현재 매달 50만 원씩 6개월간 기본소득으로 지급한 후 개인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지 살펴보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 실험의 이름은 ‘쉼표 프로젝트’이다. 기본소득이 과도한 업무에 지친 이들과 취업준비생들의 불안한 마음에 쉼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붙인 이름이다. 지난주 두 번째 기본소득 지급대상자가 추첨을 통해 선정되었기에 나는 그와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결혼 2년 차 주부이자 26세 여성인 그는 작년 한 해 동안 호주에서 일과 여행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 경험 이후 그는 한국보다는 호주에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한국의 삶은 호주에 비해 너무 바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녁에 잠시 만나기도 힘든 친구들의 바쁜 삶에 비해 호주인들은 덜 일 하면서 여유 있는 삶을 누렸기에 그 마음이 더 커졌다고 했다. 그는 하루 6시간 근로하는 일자리를 얻고 여가를 충분히 누리고 싶은 꿈이 있어 기본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자신이 창조된 이래 처음으로 경제적인 근심과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어떻게 즐길 것이며,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이며…하는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1930년 출판한 글에서 100년 뒤인 2030년이 되면 생산력이 4배 이상 증가하고 사람들은 주당 15시간만 일해도 물질적 필요가 채워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슬프게도 2030년을 13년 앞둔 2017년 우리의 현실을 둘러본다면 그의 예측은 빗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능동적으로 준비하여 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힘든 일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기본소득 등으로 잘 구축된 사회적 안전망 위에 많은 이들이 행복한 일을 추구하는 그런 미래 말이다. 우리는 쉼이 있는 미래를 두고 갈림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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