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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자존'에 관한 단상

남이 알아서 길 터주고 풍악을 울려주지 않아 지도층·도민이 나서야

▲ 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한국의 대표적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암흑가 두목이 자기 여자와의 관계가 의심스러운 부하에게 내리는 최후의 심판이다. 인명이 걸린 단죄의 명분이 모욕감이라니 조금 뜻밖이긴 하지만 나름 이해가 간다. 깡패두목에겐 ‘폼’이 목숨만큼 중하겠기 때문이다. 사기열전에 한신이 시정잡배의 가랑이 밑을 기는 ‘과하지욕’의 고사가 나온다. 모욕은 정화(淨化)의 원동력이라더니, 훗날 대장군이 된 것도 그 덕일까?

 

모욕감의 정반대 감정이 자존심이다. 자존은 풀어 말하면 자기존중의 심리이다. 따라서 전북 자존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과거 언젠가 욕된 시절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가난, 소외, 차별이 낳은 치욕과 분노와 실의와 절망의 세기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를 신파조로 낱낱이 읊고 싶진 않다.

 

금년 초 송하진 지사 주도로 시작된 ‘전북 몫 찾기’는 지역사회와 정치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덕분에 새 정부 들어 인사, 예산, 국책사업 등 다방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제 어렵게 받은 탄력을 발판 삼아, 종래의 양적 시도를 넘어 도민의 긍지를 높일 질적 도전에 나서야 할 시대적 요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존에는 내적, 외적인 두 요소가 공존한다. 첫째, 자기 확신이다. 자기 일, 자기 존재에 대한 만족과 자긍이 있어야 한다. 불만과 자학 속에서 결코 자존이 싹틀 수 없다.

 

둘째, 타인의 인정이다. 자기 깐에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해도 남들이 이를 인정치 않으면 자존감이 생기지 않는다. 세인의 평가를 외면한 ‘제 논에 물대기’ 식 나르시시즘을 경계해야 할 이유다.

 

1979년, 경남출신 유명작가의 수필 「특질고(特質考)」는 전라도 사람을 격분케 한 필화를 일으킨다. “풍류를 알고…음식솜씨 좋고…그러나 표리부동, 신의가 없다. 입속의 것을 옮겨줄 듯 사귀다가도 헤어질 때는 배신을 한다.”

 

도스토옙스키도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는 두발로 걷는 배은망덕한 존재’라 일침을 놓았지만, 이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비판이기에 참을 만하다. 하지만 특정인을 점찍어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다면 전북인 특질에 대한 공평한 표현은 무엇일까? 사람 좋은 양반들? 감정표현이나 청탁에 서툰 샌님들?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내연(內燃)하는 창백한 서생들? 도스토옙스키의 그 유명한 3형제에 비유하자면, 차남 ‘이반 카라마조프’ 쯤에 해당할 텐데, 대문호는 이런 인간유형의 최대 병폐는 자기불신과 냉소주의라 지적한다.

 

자성컨대, 이런 성향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를 유전적 속성으로 낙인찍으려는 불순한 기도나 자격지심은 배격해야 한다. 우리 본성의 밝은 면과 성취를 증거로 말이다. 최근 전북이 이룬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2023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2017 세계태권도대회 개최, 연구개발특구 지정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샴페인 터뜨릴 자격이 충분하다.

 

전북 자존의 시대는 온전히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열어야 한다. 도민 자결주의라고나 할까? 남이 알아서 길 터주고 풍악을 울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진정성과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지도층의 솔선과 도민의 지지 확보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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