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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과 번역은 문화발전의 지표

남북통합 국어사전 발간 / 국립국어위원회 만들고 / 번역원도 확충해 정비를

▲ 이재규 작가

나라살림을 예측하고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집중하여 압축성장을 하자는 ‘경제발전5개년계획’은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하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총 7차에 걸쳐 실행된 이 계획으로 우리는 1인당 GNP가 1962년 87달러에서 2003년 1만 달러를 넘어서는, 지구상 어느 국민국가도 이루지 못한 전인미답의 성장을 이뤄냈지만 이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는 ‘영혼이 없는 발전’이었다. 앞뒤 돌아보지 않은 전력질주의 끝에 국가부도사태인 1997년이 있었다.

 

“우리는 경제적 효율성을 국가발전의 절대적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 지역의 균형적 발전, 여유 있는 삶,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등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에 필수적인 가치들을 부차적인 과제로 미루어 왔다.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발전의 새로운 전략이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다.”

 

참여정부 때 이창동 문화부장관의 주도 하에 만든 <창의한국 creative korea)> 에 실린 말이다. ‘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이라는 부제를 내세운 것처럼 문화분야도 경제발전계획처럼 장기적 정책기조를 설정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지향을 문화의 나라로 잡자는 것이었다. 최근 도종환 문화부 장관이 내년 3월까지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새로운 비전을 다시 수립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새삼 <창의한국> 에 적힌 내용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니 문화예술교육의 강조, 취약계층의 ‘문화권’, 국가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조명, 남북문화교류협력 등 짚을 것은 다 짚었다. 창의적인 문화시민, 다원적인 문화사회, 역동적인 문화국가를 목표로 잡은 방향과 세부 정책들 모두 훌륭하다. 그 뒤 10년간의 정치적 후퇴를 겪으면서 이 문서는 색이 바래고 찢겼고, 블랙리스트가 상징하듯 우리 문화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배제와 독점이 횡행하는 곳이 되었다. 이제 문화계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면서 새로운 문화비전을 다수의 지혜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특별히 주문하고 싶은 것은 <창의한국> 에서도 ‘새 언어문화의 형성’이라는 장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문화란 것이 다양한 장르로 분출되지만 그 저본은 역시 구성원들 공통의 언어로 드러나는 문학이다. “언어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과 상상을 가능하게 하며,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고 표현해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자국어를 제대로 쓰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곧 그 국민의 문화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인 셈이다. 국어의 표현력, 깊이, 정확성을 높이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적 총량을 확충하기 위한 가장 기본조건이다.”

 

도종환 장관이 의원시절 발의하여 2016년 제정된 문학진흥법도 인문정신을 진흥하는 데 그 기초라 할 수 있는 문학을 진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서 있다. 문학의 토대는 언어인데 우리는 제대로 된 남북통합의 국어사전 하나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우리 언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기관이면서도 조직과 사업이 너무 취약한 국어원을 명실상부한 국립국어위원회로 만들고 세계의 언어와 교류하는 번역원도 제대로 확충, 정비해야 한다. 사전과 번역의 수준은 그 나라 문화발전의 핵심적 지표이며 이는 민간영역의 경쟁과 시장, 효율 논리에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문학인단체에서도 표현 사상의 자유 같은 기본 담론을 넘어 너무도 비현실적인 원고료 조정, 인세 확대, 다양한 출판 환경의 확보와 지원 등 창작 의지를 북돋는 제도의 정비에 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계획’은 창의가 숨쉴 수 있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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