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오는 것이 깨어 있는 시간이 무서워 술을 마셔
‘제임스 본드’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마티니를 마시는데, 주문은 “보드카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다. 보드카를 섞으니 더 맛있어 보인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에서 ‘니콜라스 게이지’가 분한 주인공 ‘벤’은 술 좀 적당히 마시라는 한 여인의 권유를 받고 “차라리 숨을 덜 쉬라고 하지”라며 실소한다. 라스베가스를>
우리들 첫 잔은 소맥이다. 두 가지 술을 적당히 비빈 후 잔 바닥을 숟가락으로 깊게 찌르면 거품이 확 솟구치는데, 이 거품이 가라앉기 전에 단숨에 들이킨다. 소화관에서 찌릿한 진동이 울리고 나면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수주 변영로 선생은 《명정 40년》을 통해 술을 찬미한다. ‘술은 동과 같이 트인다. 창살이 부연하여지면 술기운도 차츰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책은 숨김없이 적고 있다. 세속의 악마와 한판 뜨는 게 술 마시는 일이라는 데야. ‘실태(失態)는 일종의 자기 구원 행위이며 광태(狂態)는 순수의 역설적 표현이다. 빨가벗은 채,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거리낌 없는 마음의 자유, 이는 정신적 적나성(赤裸性)이다.’ 서문을 쓴 김열규 교수의 맞장구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다.
답답한 세상은 꽉 막힌 도로와도 같다. 어떻게든 뚫어보자. 눈을 꼭 감고 “오 마이 갓” 이렇게 외쳐보자. 갓길이 확 열릴 것이다. 술에 취해서 들어간 세상은 갓길과 같은 곳 아닐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이 술자리를 마련했다. 환공은 원샷을 했으나 ‘관중(管仲)’은 반만 마시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다. 이를 보고 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술을 반만 마시고 나머지를 버리니 그것이 예(禮)에 맞습니까?” 관중이 이렇게 답하였다.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오고, 혀가 나오면 말에 실수가 있게 마련이며, 말에 실수가 있으면 몸을 버린다 들었습니다. 몸을 버리느니 술을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은 일생을 주사(酒肆)와 성당 사이에서 보냈다고 한다. 취하자니 술집에 가야하고, 참회나 정죄(淨罪)를 위해 성당에 안 갈 수 없었다. 한때 시인의 왕 칭호를 받기도 했으나 저주받은 시인으로 살다간 그의 생을 술이 가로막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화 <캐롤. carol> 은 시작과 동시에 담배 연기 자욱하고 시끌벅적한 술집 장면을 보여준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술 마시는 탁자가 클로즈업된다. 한 청년이 말한다.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술을 마셔!” 다른 참석자가 말을 잇는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 무서워 술을 마셔.” 영화는 동성애를 다룬다. 캐롤.>
최근 주취 감형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요지는 술 마시고 한 행위를 형법에서 심신 상실 내지 심신 미약(즉 의사결정이나 사리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책임능력이 없다는 것)으로 본다는 것인데, 이대로 둘 것이냐 하는 것이다. 술이여, 변태(變態)여. 제발 ‘술 때문에.’라고는 하지 말자. 술이 그런 것 아니다.
세밑 새해를 맞아 자문자답 해본다. “당신은 술 마시고 그 취함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올해는 음주일지라도 써야 하겠다. 아는가, 훗날 어디서 음주 이력서라도 내보라고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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