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시설기반 문화예술 성장 크게 기대된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었다. 옆자리에 덩치 큰 외국인이 앉았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시종일관 노트북만 두드려 댔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은 착석을 하면서 먼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책을 읽든 잠을 자든 영화를 보든 하는데 이 인간은 처음부터 눈인사 한 번 없이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으로서 무언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나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만 들여다 보았다. 아마도 일본어로 된 미술서적이었던 것 같다. 스튜어디스의 음료수 서비스에도 손만 내밀 뿐 고개도 돌리지 않는 덩치 옆에서 꽤 언짢은 기분이 들었으나 아마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으려니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참 후에 화장실을 가려는지 자리를 뜨더니 돌아오면서 내 책을 흘낏 보는 것 같았다. 앉자마자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불퉁스럽게 대꾸하곤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묻는다. 뭐하는 사람이냐, 아티스트! 단답형으로 답했다. ‘와우!’ 이 사람이 반색을 하면서 노트북을 덮더니 상체까지 돌려가며 대화모드로 들어간다. 중요한 출장 보고서를 작성 중이지만 예술가랑 얘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며…. 이십여 년쯤 전의 에피소드다. 그 당시엔 외국의 어느 곳을 가나 예술가로서의 프리미엄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창적인 또는 특별하게 창조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이제는 누구나가 예술가인 세상이다. 경제가 발전을 하고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사람들은 문화예술로 눈을 돌린다. 예술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고 활성화 되면서 나아가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다. 한때는 너도 나도 고가의 최신형 캐논, 니콘카메라를 메고 장소헌팅을 다니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으나 휴대전화기의 성능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즘엔 보기에도 놀라운 구도의 샷을 누구나가 셀룰러폰 갤러리에 수백 개씩 저장하고 공유한다. 한편에선 작가들도 갖기 어려운 초고가의 장비나 작업실을 확보해서 기존 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하여 재생산하기도 하다가 아예 작가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이렇게 국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향유하고 싶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전국의 지자체들은 대부분 상당한 규모의 문화예술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한때는 엄청난 규모의 ‘예술의 전당’ 건립이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가 더 크게! 를 외치며 하드웨어로 경쟁을 하다 보니 그 큰 공간의 효율적 운영이 항상 문제가 되었다.
임실 작업실에 들어가는 산길은 전주와 임실, 완주의 경계선을 구불구불 넘나든다. 따라서 나의 행동반경도 이 세 군데 행정구역 안이다. 작년에 완주의 삼례문화예술촌을 처음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다.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양곡창고의 역사성과 이미지를 크게 훼손 시키지 않고 소박하게 리뉴얼한 건축물과 시설물 콘텐츠의 콘셉트가 너무나 좋았다. 물론 설립취지에 걸맞게 성장하려면 상당 시간이 필요해 보였지만…. 또 하나,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잠업시험장단지 역시 훌륭했다. 역시 콘텐츠의 개발과 보완이 하나의 숙제가 되겠으나 현재 완주군이 보유하고 있는 시설물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문화예술의 성장이 크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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