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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전주 어진박물관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초상화에서 어진(御眞)은 정점에 있다. 태조 어진에는 새 왕조가 지닌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위엄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6년간 재임했지만 그의 권위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계속 되었다.

최근 경기전을 찾았다. 어진을 모시는 공간은 50년 전이나 똑 같았지만 1872년에 이모한 어진이 1999년 모사한 것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만이 달랐다. 어진의 정신적인 힘보다는 형식화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새로 모사 한 어진은 족자의 향 좌측 비단이 훼손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족자의 세로축 면이 안으로 말려 누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150여 년 전에 완성한 어진과 장황이 지금도 날이 선 것처럼 반듯한데 이모한지 겨우 20년밖에 안된 모사본이 뒤틀려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불편했다.

지금의 어진 박물관은 태조 어진 박물관이라 명명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경기전과 어진 박물관에는 태조 어진이 5점이나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태조어진이 6번 모사된 것에 비해 최근 들어 특별한 계기도 없이 많이 그렸다. 문제는 같은 초본에 옷 색만 다르게 하거나 얼굴만 다르게 한 복제본이다. 특히 1837년 준원전 태조 어진에 대해 실록은 ‘홍색의 용포’ ‘홍곤포’라고 분명히 기술되어 있고 《영정모사도감의궤》에 안료 등 물량에 대한 내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성급히 판단하고 사업이 진행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어진은 공산품이 아니다.

어진 박물관은 관내에 닫집을 만들어 어진을 모시고 있다. 닫집의 크기를 건물에 맞추다 보니 실제보다 작아졌다. 이러한 착오 때문에 어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신성함과 당당함은 사라졌고 단순히 관람객을 위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어진을 고정시키는 방식도 전통 방식이 아닌, 서양식 강철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1872년 본 어진이 1년에 한번 전시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감실은 비워 놓은 채 문을 닫아야 옳다. 어진은 어진에 맞는 격을 갖춰야 한다.

어진의 배치 및 박물관의 관람동선도 문제다. 남향으로 모신 어진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난 지금의 동선은 어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 구조상 어진을 봉심하는 기본적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나아가 어진 박물관이란 명칭에 걸맞게 어진을 그리는 목적이나 재료, 제작 과정, 장황의 단계와 장식 요소 그리고 완성 후 봉심에 이르기까지 전 제작 과정을 남겼어야했다. 이에 대한 전시 내용은 없었다.

박물관의 지하에는 모사된 다른 왕의 어진 6점이 전시되고 있다. 과거 왕의 어진은 모두 동일한 의미와 위치를 갖는다. 그런데 어떤 왕은 위에, 어떤 왕은 아래에 걸려있는 등 원칙이 없다. 형식 또한 액자와 족자로 기준이 없다.

어진에는 창작자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어진은 숭배의 대상이자, 왕조의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진 중에는 화가의 이름이 전면에 병기되어 있는 것이 있다. 또 자신의 낙관까지 보란 듯이 찍었다. 참람한 일이다. 어진의 위엄을 훼손하는 일이다.

전시관의 위치도 문제이다. 정전은 남쪽을 향한다. 어진 박물관은 정전의 뒤쪽인 북쪽에 건립했다. 어진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을 볼 때 정전 뒤쪽에 어진을 모시는 것이 타당한가? 터 잡기 할 때 규봉은 극히 꺼리는 법이다

박물관에서 어진이 바라보는 방향은 전동성당의 종탑과 일치한다. 이런 점은 과거 고종이 영희전에 모신 어진의 방향이 명동성당의 종탑인 것을 알고 “부끄럽다” 며 진영을 경령전으로 옮긴 과거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정신을 그린 찬란한 역사가 있다. 그것의 중심이 전주였다. 붓이 다하였어도 뜻만은 영원한 법이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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