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어머니를 만나고 온 친구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워 보인다. 아마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어떤 날은 병세가 호전되어 지난날의 추억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고, 또 어떤 날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여 처음 만난 사람처럼 “누구시더라”하며 인사를 하는 등 엉뚱한 말씀을 하신단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날이 갈수록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데 있다. 친구는 어머니와 정답게 담소할 수 있는 시간들이 요즘 들어 더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친구 어머니도 우리 부모님처럼 깊은 산골에서 일군 몇 두렁 척박한 땅으로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셨다. 따라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배고픔도 뒤따랐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을 해결하기 위해 허리끈을 불끈 졸라맸고, 특히 자식에게 만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 이런 어려웠던 상황들이 어머니와 자식 간에 오히려 끈끈한 감정의 교차점들을 더 많이 만들게 했나 보다.
치매가 무엇인가, 사람의 기억이란 창고에 쌓아둔 추억의 보고들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질병이 아닌가. 종국에 가선 주변사람들과 함께 공유했던 추억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얀 백색들로 가득 채워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질병이다. 참 안타깝고 애처롭다. 실체는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생각을 서로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
이 일이 어찌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로만 한정 지을 수 있겠는가. 요즘 우리사회는 개인 간, 가족 간, 계층 간, 조직 간 또는 추구하는 정치적 논리가 상이한 집단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모두 치매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대편의 입장이나 의견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각자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사고가 고착화 되고 소통이 단절된 치매 상태가 되어 버렸다. 비록 “나는 아니다. 나는 매우 정상인데, 상대가 비정상이다”라고 항변한들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주변 모두가 치매상태라면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없으니 나 또한 치매라 할 수 밖에. 그러지 말자, 상대는 치매이고 나는 정상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모두를 치매집단으로 정의해 놓고 혼자 정상인들 그것이 어찌 진정한 의미의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살아온 삶과 살아야 할 삶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할 수 있는 치매 없는 사회야 말로 꿈꾸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희미하게 꺼져가는 기억의 단편이나마 붙잡고 싶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장소를 인지시켜 드리면서 지난날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친구의 몸부림이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친구처럼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서 서로의 욕심, 이기심, 편견을 훌훌 털어 버리고 소통하는 삶,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천박한 삶이 아닌, 타인을 더 배려하는 멋진 삶을 꿈꾸어 보자. 내 소중한 친구 어머니도 병이 호전되시어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환하게 웃음 짓는 얼굴을 하루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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