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당이 다르면 옷도 다르고, 인격이나 언동까지 다르다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화양동구곡이 있다. 그곳에 있는 암서재는 서인의 영수로 이름을 드높인 우암 송시열이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다.

바로 옆에 일명 큰절이라고 부른 환장사(煥章寺)가 있다. 환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절 앞에 여덟 가지 소리가 난다는 팔음석(八音石)이 있고, 숭정황제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넉 자와 의종황제의 친필인 ‘사무사(邪無邪)’ 석 자가 보관되어 있다.

화양동서원이 한창 드날리던 시절 이 절의 한 스님은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형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당파에 속해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만동묘 앞을 지날 때 공경하고 근신한 뜻이 안 보이며 활달하게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은 진보적이던 남인(南人)이었다.

또한 만동묘에 이르러서 쳐다만 보아도 감개무량하게 여기고 몸을 굽혀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보수적인 노론(老論)이고, 그저 산수구경을 간단히 하고 만동묘 구경도 절차를 무시한 채 와서 절에 와서는 중을 곧잘 꾸짖었던 사람들은 혁신적인 노론(老論)이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색에 대한 강인한 집념은 당색에 따라 옷의 디자인이나 헤어스타일도 달리하였다고 한다. 노론 가문의 부녀자는 저고리의 깃과 섶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접었으며 치마 주름은 굵고 접은 수가 적으며, 머리 쪽도 느슨하게 늘어서 지었다.

이에 비해 소론 가문의 부녀자는 깃과 섶을 뾰족하고 모나게 접었다. 이처럼 모난 디자인을 ‘당(唐)코’라 불렀으며 소론 가문을 당코로 속칭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치마 주름 수도 많고 잘며 머리 쪽도 위쪽으로 바짝 추켜 지었고 이 같은 옷매무새나 머리모양은 그들 당의 정신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노소론의 분당 원인은 주자학(朱子學)을 둔 보수적 해석과 혁신적 해석 때문이며, 곧 보수혁신이 그 분당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당코처럼 날카로운 디자인, 잔주름 많은 치마, 바짝 올려붙인 머리 쪽이 혁신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완곡한 옷깃, 굵은 치마 주름, 느슨한 머리 쪽은 보수적 이미지를 물씬 나게 한다.

그들이 속해있던 당색이 인격이나 언동(言動), 그리고 옷차림새에까지 배어버린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이와 같이 당색과 인간이 절충 융합해 있었던 같다.

그러한 당색들이 오늘날까지도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 왔고, 노론, 소론으로 이름은 계속 바뀌면서도 당색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한 폐단 때문에 질곡의 세월을 보낸 끝에 <택리지> 를 지은 이중환의 말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정사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고, 실상 나랏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관직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관청을 주막같이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대에도 당마다 옷 색깔이 다르다. 노란색이나 , 파란색, 또는 빨간색으로 당의 특색을 나타내고, 그들만의 고유언어로 상대방을 공격도 하고, 같은 당을 똘똘 뭉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속에 또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君子)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小人)이다’라는 허균의 ‘군자소인지변’이라는 말이 하나도 변형되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제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우파네. 좌파네 하며 서로의 등을 떠밀며 날 선 칼을 겨누고 있는 그러한 세상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역사의 거센 풍랑에 흔들리고 있다. 이 배가 정박할 따사로운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