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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비와 홍살문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전주천 남천교를 지나 한벽루 쪽으로 걷다 보면 길 왼편에 하얀 돌기둥과 붉은 색칠을 한, 나무문처럼 생긴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바로 전주향교 하마비와 홍살문이다. 전주향교 앞 하마비에는 과차자개하마(過此者皆下馬-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 경기전 앞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여기에 이른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라. 그리고 잡인은 출입을 금한다)라고 쓰여 있다. 남원 향교 하마비엔 대소인원 개하마(大小人員 皆下馬-대인, 소인 모두 다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라)라고 쓰여 있다. 이렇듯 하마비는 “이곳은 선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곳이므로 이곳에 이르러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탈것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전주향교 홍살문은 양쪽 2개의 붉은색 둥근 기둥이 있고 윗부분엔 끝이 뾰족하여 마치 화살처럼 생긴 살 7개가 양쪽에 있다. 가운데는 삼지창처럼 생긴 창과 태극문양이 있다. 그래서 붉을 홍(紅)자와 화살의 살을 합해 홍살문이라 한다. 경기전이나 향교, 서원 등, 유교문화 공간 입구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의 붉은색은 오방색 중, 양(陽)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 삿된 기운이 함부로 범접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홍살문 중앙에 있는 태극문양은 이 세상에는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이 존재하는데 이 두 기운의 상호작용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상징적 표현이다.

음양오행 사상에 의하면, 우주 생성의 근본원리에 해당하는 기본색으로 청, 적, 백, 흑, 황색이 있다. 이 중 청색과 적색은 양에 해당한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과 불의 적색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력한 상징성을 느꼈고 식물과 하늘의 푸른색에서는 왕성한 생명력과 희망을 느꼈다. 이처럼 오랜 옛날부터 적색과 청색은 힘과 생명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옛 선조들은 삿되고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청색과 적색을 즐겨 사용해 왔다.

적색, 청색 모두 생명력이 강한 색이지만 실제 벽사(辟邪-사악한 기운을 막아줌)의 색으로 사용된 것은 적색이 압도적이다. 전통 혼례 때 신부의 얼굴에 바르는 붉은 연지 곤지는 시집가는 여인에게 시기와 질투로 인한 공방살이 들게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아들을 낳으면 금(禁)줄에 고추를 매단 것도 붉은색의 양의 기운으로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다. 여름에 백반을 섞어 손톱에 들이던 봉숭아물 역시 몸에 붉은색을 지니면 나쁜 일이나 사탄이 범접하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먹었다. 동지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귀신이 활동하기 좋고, 태양의 운행으로 보면 남반구의 마지막을 찍고 다시 북반구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첫날이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것에 악귀로 인한 나쁜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붉은색의 팥죽을 집 사방에 뿌린 것이다.

정읍의 무성서원에서는 봄, 가을 향사를 지낼 때 깨끗하고 붉은빛이 나는 흙을 홍살문에서부터 사당인 태산사까지 마당 중앙에 두 줄로 뿌린다. 일상생활에서의 불행이나 질병과 같은 부정적인 일들이 나쁜 기운을 가진 귀신들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그 악귀들이 두려워하는 붉은색을 상징적 힘으로 사용한 것이다.

무심코 지나친 홍살문의 붉은색에 옛날 선조들의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을 줄이야.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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