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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꽃밭 같은 동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전주한옥마을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전주시는 문화시설 연장개관과 온라인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며 시민과 관광객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으라차차 향교길 공연, 전통연희 퍼레이드 등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보며 대기 중인 프로그램도 한가득이다. 주말 평균 관람객 수가 150명대에서 300명대로 늘어난 최명희문학관도 지난 11일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열며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이 시간이 너무 그리웠다.’는 수강생들은 먼저 나서서 개인위생을 지키며 문학 강연을 즐겼다. 문화시설과 이용자 모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중인 것이다.

문학관이 터를 잡은 이곳. 어린 최명희(1947∼1998)가 뛰어놀았던 ‘화원동’(현 풍남동) 일대는 오랜 시간 주거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동네다. 현 전주시청 자리에 전주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큰 시장과 가까워 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물류의 중심이었다. 또한 주요 기관과 공장 등으로 근거리 출퇴근이 가능해 3만 명 내외의 인구가 사는 부촌이었다.

하지만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선정되고 덕진동을 중심으로 부도심이 형성되면서 문화연필, 백양 메리야스로 대표되는 공장들이 이전하고, 1981년 전주역이 우아동으로 옮겨 간 뒤에는 경제활동 주력 층이 점차 빠져나가게 된다.

“구두 수선소며 가방 도매상들은 이미 자취도 없어진 채, 어디론가 밀려나버리고,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노트사, 그리고 낯익은 금은방들도 어수선한 흙먼지에 뒤덮여, 간신히 고개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다.”(최명희 단편소설 「만종」 중)

1980년대 전국체전을 계기로 풍남동 일대에서 벌어진 변화를 다룬 최명희의 단편소설 「만종」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생생하다. ‘사람들 모다 빠져나가먼, 매급시, 돈은 객지에서 다 갖꼬 가고, 여그는 빈껍데기 건물들만 남능거 아닌가?’라고 걱정하는 마을 어르신의 목소리와 절반은 이미 허물어져 가시 철망으로 둘러놓은 울타리, ‘ㅁ 중에서 ㄱ’ 부분만 남아있는 경기전까지. 사람들의 눈길에서 멀어져 시간 속에서 스러지고 있는 것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글에 담겨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쓰러졌던 담벼락이 새 단장을 하고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은 2000년대부터다.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과 2012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선정 등으로 전주는 교육도시에서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한옥이 모여 생긴 독특한 풍경과 경기전·오목대·전주향교 등의 문화유산, 향토음식, 남부시장 청년몰과 야시장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면서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콘크리트 같은 딱딱한 일상에 지쳐 휴식이 필요해 전주한옥마을에 왔어요. 구석구석 예쁜 한옥마을 전경과 맛있고 푸짐한 음식이 함께하니 숨통이 트이네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니 저까지 밝아지는 기분이에요.”(최명희문학관 방명록에서, 한○윤·서울)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본다면 이 길을 끝내 가리라’라고 말했던, ‘아늑하고 화사했던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의 유년 시절과 잠깐 살다 옮긴 전동집에서의 짧은 기억’을 사랑했던 작가가 지금의 고향땅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골목마다 보물이 숨어 있는, 소소한 행복이 넘실거리는, 화사한 꽃밭 같은 이곳을 우리는 잘 지켜내고 가꿔야 한다. 애정 어린 눈길과 적당한 거리, 배려하는 마음이 모여 틔워낸 웃음꽃에서 그윽한 향기가 풍겨온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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