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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사람인데 왜 화가 날까

이은선 선이오페라앙상블 대표
이은선 선이오페라앙상블 대표

얼마전 핫하게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온 일화 중 산부인과 전공의인 곰과 여우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보면서 ‘하아, 저 친구 억울하고 힘들겠네’했던 기억이 있다. 곰친구는 잠도 못 자고 끼니도 거르면서 일하는데 여우친구는 하고 싶은 거 요령 피우면서 하는 모습을 보며 속이 답답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주인공 산부인과 조교수 양석형님이 두루두루 살피는 성격이다 보니 곰친구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는 게 어찌나 고맙던지. 쑥스러워하며 건넸던 떡볶이가 어찌나 감동이던지.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용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싶어서 합창단을 다니던 때의 일이다. 그때는 시립합창단이 상임이 아니어서 한달에 십만원 조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게는 큰돈이었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값어치를 하기 위해 주어진대로 시간 약속 잘 지키고 빠지는 일 없이 성실하게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을 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항상 늦고 매번 요령을 피우시며 결석하는 몇 분이 있었는데 그날 역시 그 몇 분 때문에 일찍 오고 항상 출석하는 사람들이 리더의 기분 나쁜 차가운 온도를 받아들이던 순간이었다. 물론 앉아있는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었지만 안 온 사람들 대신 훈계를 들어야만 했고 그날의 연습 분위기는 노래를 부른다기 보단 눈치보며 주눅든 상태로 그냥 알 수 없는 비음악적인 소리를 냈던 거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상했다. 왜 우리가 혼나야 하지? 안오신 분들이 혼나야 맞는 건데 왜 우리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때 만약 리더가 성실하게 온 사람들에게는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안 오신 분들 항상 늦으시는 분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만 잘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안 오신 분들에게 직접 징계를 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빠진 기분을 애써 누르며 이렇게 대응을 했더라면??

살다 보니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다른 형태로 많이 일어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실하고 착하게,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자 지냈는데 억울한 일들이 많은 세상. 요령 피우고 대충 윗사람들 분위기 맞추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는 세상. 내가 겪은 상황이나 ‘슬의생’의 곰친구가 겪었던 상황은 주변에서 누구나 겪고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맘이 불편하다. 난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 불편하면 안되는데 불편하다. 이런 일들이 누적이 되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살아보니 좋은 사람으로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내가 바보구나’‘날 바보로 아는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참 많더라는 말이다. 참는 거고 이해하려 하는 건데 그게 당연히 “저 친구는 괜찮아, 다 이해해” 이렇게 될 때는 내 속에 있는 다른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욕이라도 하고 싶은 맘들이 불끈불끈 올라오는 경우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 참아내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이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착하고 성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좋은 사람이 당연하다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기보단 더욱 아끼고 보호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그 보호와 아낌이 내게도 돌아올 테니 말이다. 따뜻한 떡볶이로 말이다. 마치 ‘당신은 지금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아내고 있다’며 다독여주듯이. 나도 오늘 떡볶이 몇 인분을 누군가에게 나눠야겠다.

 

△이은선 대표는 원광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전주시립합창단 상임단원을 역임했으며 국내외 다수의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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