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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와 예술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권휘원 화백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 달,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은 작가가 있다. 영국의 그라피티(graffiti)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뱅크시’다. 그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항상 주목을 받아왔지만, 지난 3월 23일(현지 시간) 열린 크리스티 경매 결과는 더 특별했다. 한 소년이 배트맨이나 스파이더 같은 인형 대신 망토를 입은 간호사 인형을 들고 노는 모습을 담은 그림 ‘게임 체인저’. 자그마치 1440만 파운드(한화 224억 원)에 낙찰된 이 그림은 코로나 19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해 5월, 뱅크시가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응원의 뜻을 담아 영국 사우샘프턴 종합병원에 기증한 것이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신분을 숨기고 세계 주요 미술관을 급습해 도둑 전시를 하거나 도시를 찾아다니며 거대 자본과 환경파괴, 전쟁을 수단으로 여기는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거리의 벽화들로 예술의 힘을 증명해온 작가다.

권력과 제도에 저항하며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온 그가 코로나 팬더믹의 위기 상황을 지나칠 리 없었다.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의 지하철에 방역요원처럼 차려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열차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열차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채기를 하는 쥐, 마스크를 쓴 쥐, 마스크 쓰라고 권하는 쥐 등 다양한 모습의 쥐가 등장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뱅크시였다. 이 그라피티는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못 일어나’ 란 제목의 동영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열차 안의 그림은 지하철회사의 ‘낙서 반대’ 규정을 충실하게(?) 따른 청소원에 의해 깨끗이 지워졌다.

사실 의뢰를 받거나 허락을 받지 않고 그리는 그라피티는 위법이다. 그러나 화제가 되는 대부분의 그라피티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영역에 놓인 것들이다. 뱅크시의 작업도 예외가 아닌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그라피티가 갖는 힘이 자유롭고 도발적인 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롯데월드몰 지하 1층 벽에 전시되어 있던 세계적 그라피티 작가 존원(Jon One)의 작품 ‘거리의 소음’을 20대 연인이 훼손해 화제(?)가 됐다. 그림 앞에 놓여 있는 붓과 물감통을 보고 참여 퍼포먼스로 완성되는 그림으로 생각했다는 이들의 행위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낙서가 더해진 그림을 보니 ‘낙서가 된 예술’과 ‘예술이 된 낙서’의 차이가 궁금해진다. 이 또한 예술이 가진 힘일 터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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