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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의 여백

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작품에 숨어있는 여백을 따라가는 일이다. 독자는 여백에 숨어 있는 은유성을 해독하고 감수성에 자신의 사고를 삽입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탐색하는 노력이다.

일반적으로 여백을 찾아내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덜 읽기다. 좀 생소한 말이지만 덜 읽기는 작품 속에 담겨진 단어나 문장 또는 사건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문장을 아예 읽지 않고 넘겨 버리기도 한다. 삶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작가는 물론 독자는 현실적 삶을 단순하게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것은 삶 속에서 적절히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욕구의 발로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더 읽기다. 더 읽기는 작가의 작품을 문장이나 문맥으로 읽는 것이다. 작품을 쉽게 읽고 쉽게 이해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작품 속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 또는 작품의 분위기는 물론 심지어 사건 전개에 까지 끼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리려한다. 작가의 생각에 따라 작품의 의도에 따라 독자의 견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이 다양할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짙다. 세 번째로 행간 읽기가 있다. 행간읽기는 작가가 글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읽기다. 읽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뒤 맥락을 따져보며 읽어야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형식적인 의미를 떠나 행간과 여백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시집이나 수필집 혹은 소설책도 좋다. 몇 권 지니고 여행길 위에 서면 시골길은 시골스럽고, 강물은 우수에 잠겨 흐른다. 노을빛 하늘은 혼자서 외롭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한 마리 새는 창백한 월광月光이다. 여행이라고 해서 멀리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덕진연못 연화교에 발을 내밀면 말 그대로 진경산수화다. 연꽃이 피어도, 연꽃이 져도, 연향은 그대로 연못에 남실거린다. 도립국악원에서 드려오는 수궁가 한 대목은 언제 들어도 절창이다. 그뿐이 아니다. 건지산 나무마다 하얗게 앉은 새들의 이름을 몰라도 누구 한 사람 시비를 걸지 않는다. 마치 한 폭의 묵화다.

묵화의 특징은 여백에 있다. 여기서 여백은 배경이 아니고 삼차원의 공간을 암시한다. 묵화의 여백은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공백이다. 칠하고 남겨 놓는 공백이 아니며 남은 종이의 흰 부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백은 주제를 둘러 싼 공간의 확산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화면 밖을 연상케 해야 한다. 삼차원의 세계를 암시하여 화면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여백의 미는 넘치고 가득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여백이 있기 때문에 답답한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묵화나 문학작품이 추구하는 여백의 의미는 크게 다를 바 없다.

문학작품의 여백은 그리움이고 여유를 갖는 것이다. 누군가가 올 자리를 남겨둔 것이다. 다 채워져 자리 하나 남겨 놓지 않았다면 어떤 그리움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여백이 없다는 것은 관계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고해성사다. 문학작품에 여백이 존재하는 동안 우리들의 사랑은 진행 중이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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