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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무덥던 날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그날,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예감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전남도청에 남은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의 말을 글로 읽은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실제로 시민군은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했다. 그 뒤 2007년, 한 여고생의 시를 읽고 사람들은 또 한번 말을 잃었다.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불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 떨어져부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 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 「그날」, 전문.

 

시의 정황이 급박하다. 사람보다 총구가 먼저 보이는 상황은 전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공의 자전거 짐칸에 웬 어린놈이 다짜고짜 올라타서는 어른더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그 어린놈을 ‘총구녕’이 데리고 간 시적 긴장은 팽팽하다.

전라도 토박이말이 시행에 쩍쩍 들어붙는다. 계엄군 앞에서 입이 안 떨어졌지만, 자신을 사촌 형님이라고 둘러대는 어린놈 말이 사실이 아님을 밝힌 순간 주인공은 ‘어린놈’을 계엄군에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총구를 벗어나기 위해 자전거를 정말로 ‘허벌나게’ 몰았을 주인공은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서 교복을 입고 있는 어린놈을 본다.

총구 앞에서 엉겁결에 둘러댄 언행이, 살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던 제 목숨이 버거웠을까.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멀리하고 어린놈의 환청을 듣는 주인공, “목이 다 쇠가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으로 맺어지는 시상은 ‘그라고’라는 입말에 들어붙어 피가 마른다,

5월, 무덥던 날-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했던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던 광주여. 이 땅의 산천은 2021년 5월 18일 오늘도 어린놈의 뒤가 궁금해서 ‘그라고’ 흰꽃들을 한꺼번에 피우는가.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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