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넘게 유품정리에 매달렸다. 2년 전 작고하신 장모님 댁이 팔리면서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40년 넘게 산 단독주택인데다 대부분 오래된 물건인지라 “모두 버리면 되겠지” 싶었다. 그래서 잠깐 들려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신경써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오래된 가구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 중 20여 년 전에 구입한 자개농이 가장 문제였다. 전주 등 전북지역에는 자개농을 취급하는 곳이 아예 없어 고민이 되었다. 평소 아끼셨고 비교적 고가여서 보관할 곳을 물색했다. 내심 나중에 전원주택이라도 살게 되면 필요할 것도 같았다. 지인들에게 연락해보고 이삿짐센터에도 문의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처분할 것을 권했다. 이삿짐센터는 5톤 컨테이너박스에 1년 맡는데 20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천만원, 이천만원짜리 자개농도 1년 후면, 열이면 열 모두 버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찌어찌해 서각공방을 운영하는 분이 실어갔다. 그밖에 침대, 냉장고, 책장, 식탁, 상, 어항 등은 밖에 내놓았더니 동네 분들이 들고 갔다. 나머지 것들만 주민센터에 들려 대형폐기물 딱지를 붙여 놓았다.
다음은 책이었다. 1년 반전 이사하면서 새로운 아파트가 좁아 장모님댁 작은 방에 갖다 놓았던 걸 다시 옮겨야 했다. 3000권이 넘는 책 중 잡지나 오래된 연구서, 문고본, 사전류 등은 이미 없애 절반으로 줄인 상태였다. 이중 일부는 지인에게 나눠주고 또 일부는 폐기하고 나머지는 시골 선산의 컨테이너박스로 옮겼다. 시군지, 미술전집, 서화집이나 문화재도록 등 무거운 게 많아 꽤 힘들었다.
가장 큰 난제는 옥상 장독에 있는 된장, 간장, 고추장, 매실엑기스, 소금 등이었다. 여기에 젓갈까지 있었다. 장모님이 힘들여 직접 담근 것인데다 대부분이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어서 수고스러워도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화단 모퉁이에 묻어 둔 장독 2개에는 가자미 젓갈이 가득 차 있었다. 몇 년 전 가자미를 사다가 일일이 손질한 후 소금과 함께 담은 것이다. 아내와 함께 퍼내어 거르는데 곰삭은 비린내가 진동했다.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서인지 냄새와 달리 맛은 좋았다. 페트병에 담아 이웃집과 친지들에게 나눠주니 좋아했다.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무리했는지 끝날 무렵,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화장실에도 기어 갈 정도였다. 다행히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집중치료를 받은 덕에 오래지않아 회복되었다.
이번 유품정리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쓰던 물품들은 어떻게 되지? 옷이며 책이며 침대며 은행통장이며 블로그들은? 고스란히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남을 게 아닌가.
흔히 나이 들수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젊어서는 지식도, 물품도 축적해야 하지만 노년에는 그것을 하나씩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번에 절감했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짓카 가타즈케(實家片付け)’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살아 생전 생가(生家)의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다. 노년 준비의 전략 중 하나로 꼽힌다. 집안을 정리하지 못한 채 늙어서 간병을 받거나 요양병원 신세를 질 경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아마도 성업 중인 유품처리업체가 들어와 모두 쓰레기로 가져갈 것이다. 무소유는 실천하지 못해도 황혼 길이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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