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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예의와 범절

송준호 우석대 교수

송준호 우석대 교수
송준호 우석대 교수

책 한 권을 다시 읽었다. <비밀정원> 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제4회 혼불문학상 당선작인 이 소설은 ‘노관’이라는 이름의 유서 깊은 종갓집을 배경으로 가문의 질서를 거역할 수 없어서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만 남녀의 올곧고 강렬해서 더욱 안타까운 모습으로 다가온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교훈과 미적/언어적 감흥 두 가지를 동시에 얻게 된다는 걸 아주 오래전 <문학개론> 강의시간에 구체적으로 배웠다. 그 가운데 소설은 작가가 그려낸 인물의 독특한 성격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간접적으로나마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걸 읽다 보면 작중인물의 몇 마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비밀정원> 에도 그런 게 있었다.

“젊었을 때 경계해야 할 것은 무지와 천박이란다. 부지런히 학문에 힘쓰고 예절을 익히렴. 예절이란 단순한 생활 범절을 넘어서 세상을 예우함을 말하는 거란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온순한 마음가짐이 바로 예절이지.” 나는 그의 조카 요와 함께 주인공 율이 삼촌이 건넨 이 말에 귀를 기울이며 거기 적힌 활자에 눈길을 잠시 멈추었다. 무지와 천박을 경계하라는 말은 일부러 못 본 체하고 지나쳤다. 이제는 ‘젊었을 때’를 훌쩍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오만해서거나.

내 마음의 눈길을 붙든 말은 ‘세상을 예우함’하고 ‘온순한 마음가짐’이라는 두 구절이었다. 세상을 예우할 줄 아는 온순한 마음가짐을 몸에 배도록 익히라는 것, 언제 어디서든 그처럼 낮은 자세로 사물과 사람을 대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라는 것. 그 대목을 속으로 몇 번 더 읽다가 나는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십여 년 전에 들었던 ‘말씀’ 하나가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되살아나서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대학의 전임교수 발령을 앞두고 나는 학과의 어른들 가운데 한 분인 정양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그분이 사시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시골집 골방처럼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서재로 내 손목을 이끄신 선생께서는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면서 교수가 되신 걸 축하한다는 덕담부터 꺼내셨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선생 특유의 굵고 낮은 소리로 내게 이런 당부 말씀을 들려주셨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사회적으로 대접을 비교적 높게 받는 편이라고,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은 직업이라고, 그럴수록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머리를 꺼낸 선생께서는 내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면서 이렇게 덧붙이시는 것이었다.

“오로지 혼자만의 노력으로 교수가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 어려운 공부를 해낼 수 있는 재능을 부모님께서 물려주셨지 않습니까. 송 선생의 오늘이 있기까지 옆에서 희생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의 정성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는 교수가 가진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참 많지요. 그들에게 더욱 낮은 자세로 다가가도록 하세요.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눠 쓰는 일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이고 예의가 아닐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돌이켜보니 그날 그 어른이 내게 들려주신 말씀도 ‘세상을 예우하는 온순한 마음’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교수이기에 앞서 더불어 살아가는 한 개인이자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의’와 ‘범절’이었던 것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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