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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의 역사, 강광배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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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20182월 설날,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종목은 이름도 낯선 스켈레톤이었다. 머리를 아래로 두고 엎드린 자세로 썰매를 조정해 빠른 속도로 1,200m 이상의 트랙을 내려오는 스켈레톤은 그 위험성 때문에 1928년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고도 두 차례나 중단되는 과정을 겪고서야 동계올림픽 영구 정식 종목이 됐다.

사실 올림픽에서의 스켈레톤금메달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평창올림픽의 윤성빈이 처음이었다. 봅슬레이, 루지와 함께 3대 썰매 종목으로 꼽히면서도 비인기 종목이었던 스켈레톤은 어찌 됐든 평창 이후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2022 북경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의 스켈레톤봅슬레이와 함께 썰매 종목에서 메달 가능성이 기대됐다. 그러나 평창의 영광은 다시 오지 않았다. 들여다보니 선수들이 제 기량을 펼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여전히 척박한 우리나라의 썰매 스포츠 환경이다. 평창 이후 인력과 장비, 지원 등 어느 것 하나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여건에서 선수들의 분투가 이어졌던 모양이다.

다시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 한국의 썰매 스포츠 역사를 연 전북 출신 강광배(한국체육대 교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대학 시절(전주대) 무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키를 만났다. 최연소 스키강사가 되어 무주 산골 아이들을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로 키워낸 그는 루지 국가대표선수 선발에 도전했다. 부상으로 스키를 더는 하지 못하게 되자 도전한 종목이 루지였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루지 국가대표 선수로 처음 출전했던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스켈레톤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는 봅슬레이로 출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덕분에 동계스포츠계에서는 그를 썰매 종목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개척자 '광배 강'이라 불렀고 스위스에 있는 IOC 박물관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스켈레톤)에서 그가 입었던 운동복과 모든 장비를 모아 전시할 정도로 그의 도전을 주목했다. 지도자가 된 이후 그는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고 지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스켈레톤으로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던 윤성빈도 그가 발굴해낸 제자다. 평창의 스켈레톤 금메달과 봅슬레이 은메달 뒤에도 그가 있었다.

10년 전 그는 선수 선발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여건에서도 썰매 종목의 희망을 확신했다. 평창올림픽에서 그의 희망은 실현됐다. 그러나 불과 4, 안타깝게도 짧지만 빛났던 한국의 썰매가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도전 정신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한계일 터다. /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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