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민주당에 입당하며 익산시장 선거에 나선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입당 기자회견에서 중학교 동기동창인 정헌율 익산시장과 아름다운 경쟁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지금도 정헌율 시장과 친한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선거란 과정도 친구라는 것을 벗어나면 안된다 생각한다. 인간의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아름다운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에 복당한 정헌율 시장은 복당하기 전 사석에서 지인에게 “혹시라도 자신이 다시 시장에 당선되지 못하면 최정호 차관 같은 사람이 익산시정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며 친구인 최 전 차관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선거이지만 우정을 지키면서 아름다운 경쟁을 하고 싶다던 최 전 차관 처럼 정 시장 역시 경쟁자가 된 친구와의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 시장의 민주당 복당으로 치열한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서 익산시장 선거는 비방과 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선거전이 불붙었고 정 시장과 최 전 차관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현역 시장인 정 시장을 겨냥한 허위비방성 문자메시지가 시민들에게 대량 살포되고 경찰은 비방·음해성 네거티브 행태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비방·음해성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친 후보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TV토론 등에서 친구 간의 설전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주변에서 심은 오해와 불신의 싹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선거는 총성 없는 전쟁과 같다. 눈살을 찌푸리는 유권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거가 축제가 아닌 전쟁이 되고 있는 이유다. 전쟁 같은 선거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에 불타고 선거판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갈려 서로 원수가 된다. 전쟁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인간애와 사랑, 우정이 싹튼다고 하지만 선거는 난무하는 비방 뒤로 분노와 회한이 싹튼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유안진 시인의 수필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는 1986년 발표된 이후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전 국민의 고전(古典)이 되었다. 지란지교를 꿈꾸던 친구들까지 갈라놓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정치와 선거가 축제의 장으로 돌아올 날은 언제쯤일까.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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