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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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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일용직 노동과 식당일로 4남매를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꿈을 접었다. 대신 선택한 길은 간호사였다.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간호학원에 등록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건물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척추를 다치고 하반신은 마비됐다. 후유증은 컸다. 1년 반 동안 세 번의 수술과 고통스러운 재활 치료를 이겨냈지만 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장애인 핸드사이클과 노르딕스키 국가대표인 전북 출신 이도연 선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다. 마흔여섯, 세 딸의 엄마였던 그의 도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가 출전한 종목은 7개. 9일 동안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스키 좌식경기와 혼성계주 등 7차례 경기에 출전했던 그는 쉼 없이 달렸다. 그러나 메달은 없었다. 게다가 순위도 모두 10위권 밖이었지만 그는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긴 선수였다. 

그가 달린 거리는 모두 53.63km, 시간으로는 4시간에 가깝다. 메달은 없었지만 모든 경기를 완주해낸 이도연의 도전과 의지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건네는 인간 승리였다. 

이도연은 본래 핸드 사이클 국가대표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은메달과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 금메달이 그 결실이다. 한 종목을 정복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는 다시 겨울 종목인 노르딕스키에 도전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설원으로 이끌었다. 

이도연의 도전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메달 대신 기록보다 큰 의미를 갖는 완주를 남겼고, 2022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는 핸드사이클 3관왕을 거머쥐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도연의 이름을 다시 만났다. 지난 2월에 열린 전국 장애인 동계체육대회에서다. 전북 대표로 출전한 이도연은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4개 경기에서 모두 동메달을 땄다. 1972년생, 쉰넷의 나이로 20~30대 선수들과 겨루어 얻어낸 결실은 빛났다.  

마침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이 개막했다. 한국 대표 선수단 명단에 그의 이름이 있을까 찾았으나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그의 이름은 언제까지 기억될까 궁금해진다. 

패럴림픽은 언제나 올림픽 뒤에 열린다. 그래서 관심도 박수도 늘 한 발 늦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결코 뒤에 있지 않다. 

올해도 저마다의 고난과 역경을 견뎌낸 선수들이 또다시 메달을 향해 달릴 것이다. 그들의 도전은 곧 그들이 지켜낸 삶의 무게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순위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시간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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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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