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시간과 건축공간

image
시간과 건축공간

가까운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몸에 새겨진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부자들의 금고에는 세대를 거쳐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보관되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퇴근 버스를 탈 2시간이 없어 심장마비로 죽고 동네 불량배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치는 게 일상이다.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으로 빈민가에 사는 많은 사람은 매일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삶에 필요한 비용이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결제가 되는 시간의 상상력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시간만을 급박하게 대하며 살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순환한다. 아침이 되면 닫혀 있던 건물들이 문을 열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다가 날이 저물면 도시의 길에는 사람이 종적이 줄어들게 된다. 매년 더 뜨겁고 습해지는 여름이 다가오지만 때가 되면 지나간다. 같은 건물이라도 새벽녘의 모습과 저녁노을이 비칠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건축설계 자체는 평면에 그리는 2차원적인 작업이나 그것은 3차원적으로 지어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람은 찰나가 아닌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므로 건축 공간은 사람이 머물고 움직이며 생활하는 긴 시간을 위해 수많은 물질로 지어진다. 땅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천천히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이 변하는 것이며 이렇듯 물질을 통해 시간을 불러내고 이어가는 일이다. 어떤 건물이든 특정한 사회를 위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용도를 위해 지어지게 되어 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주문생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용도를 단지 편리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짓고자 하는 시설의 본래 목적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집과 집 사이의 간격처럼 가까운 거리만 보고 살지만,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먼 산과 하늘을 보게 된다. 건축공간은 크건 작건 그것이 서 있는 주변과 거리를 두고 대립하고 있으며 우리의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으로도 작용한다. 물리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게 된다든지 딱히 분명한 용도가 없으면 건물의 사회적인 가치가 사라진다. 고유한 지역성이나 역사성이 희박해진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지금 있는 흔한 주택들을 이 도시의 시간적인 삶의 일부로 여기고 시간이 어떻게 공간에 누적되는지를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자기가 살아갈 현재를 위해 설계하고 짓지만 일단 지어지고 나면 미래를 향한 긴 시간이 그 공간에 누적되기 시작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집과 길과 주변의 사물들과 함께 눈비를 맞으며 바람에 맞서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간을 경험한다. 예술적으로 잘 지은 집을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축이 아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건축의 근본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 그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다. 우리 공동의 생활을 지탱하는 질서를 세우고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건축설계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다. 커피 한잔에 4분, 버스요금 2시간을 벌기 위해 오늘도 바삐 뛰어다니는 우리에게 건축은 시간을 짓는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한다.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