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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봄가뭄과 호남평야 통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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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계절에 근심이 커진다. 봄가뭄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영농기를 앞두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댐 수위가 낮아지면서 농심은 타들어간다. 기다리던 봄비가 내렸지만 완전한 해갈에는 한참이나 모자란다. 닫아두었던 물길을 열어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큰 행사가 매해 4월 호남평야에서 열린다. 호남평야의 젖줄 동진강 낙양취입수문에서 열리는 ‘백파 통수식’이다. 한 해 풍년농사와 안전영농을 기원하며 수문을 열어 농업용수를 흘려보내는 유서 깊은 행사다. 전국 곳곳에서 통수식이 열리지만, 대표 행사는 단연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주관하는 호남평야 백파 통수식이다.

백파 통수식은 가뭄 극복을 위한 근대 농업용수 개발의 대역사(大役事)를 기리자는 취지도 담겨있다. 한반도 도작(稻作)문화의 발상지인 곡창 호남평야에는 일찍부터 대규모 수리‧관개(灌漑) 시설이 조성됐다. 20세기 초에는 섬진강 상류에 운암제를 축조(1927년)하고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운암발전소‧칠보발전소를 통해 섬진강의 수자원을 동진강으로 끌어내 호남평야 농업용수로 사용했다. 그리고 1965년에는 운암제 하류 쪽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축조해 물그릇을 키웠다.

호남평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중 하나가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 동진강 본류에서 김제용수간선과 정읍용수간선이 갈라지는 낙양취입수문이다. 1927년에 준공된 이 시설은 동진강 유역 농경지에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용수로에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농어촌공사가 정한 호남평야 관개기간은 4월 초부터 9월 말까지다. 이에 따라 해마다 4월에 통수식을 갖고 수문을 열어 180일간의 급수작전에 돌입한다. ‘백파제(百派祭)’라는 행사 명칭은 낙양취입수문 기념비에 새겨진 ‘일원종시백파(一源從是百派)’라는 문구에서 따왔다. 한줄기의 물이 백갈래로 퍼져 광활한 농경지를 고루 적셔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올해는 이 백파 통수식이 취소됐다.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호남평야에 물을 대는 섬진강댐의 저수율이 너무 낮아 차질이 생겼다. 결국 낙양취입수문 개방 시기를 5월로 늦췄고, 4월 영농의 시작을 알리는 통수식은 열지 않기로 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4월 초에 열리던 백파 통수식은 어느 순간 4월 20~25일로 늦춰졌고, 올해는 가뭄으로 수문 개방 시기를 더 늦추면서 통수식마저 취소한 것이다. 수리시설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한계가 있다. 농사는 결국 하늘을 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쌀값 폭락이 거듭되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은 웃을 수 없게 됐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농촌 공동체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다. 농업‧농촌, 농민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 메마른 농촌에 단비가 내리기는 할까?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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