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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보존과 대중화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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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무형문화유산까지 확대한 것은 2001년이다. 유네스코는 2000년 가을, 새로운 제도를 발표했다. 소멸 위기에 있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인류무형문화유산 걸작지정제도다.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하고 유형유산을 보존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1972년이니 유형유산에서 무형유산까지 넓히는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

유네스코가 규정한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개인에 의해 표현되며 공동체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과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적 공동체의 전통에 기초한 창작의 총체.

무형유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각 나라의 수많은 무형유산은 생명을 다시 얻게 됐다.

우리나라의 무형유산도 이 대열에 섰다.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무형유산들이 쏟아졌으나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01년 등재된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다. 판소리는 그 뒤를 잇는다.

판소리는 2003년 우리나라의 두 번째 세계무형유산이 됐다. 모든 민족적 정서가 황폐해지고 말살되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근근이 맥을 이어왔던 판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조명받게 된 계기였다.

판소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판소리의 대중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면 판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무대 위에 놓았던 소리꾼들이 적지 않다. 그중 가장 치열하게 대중들과 교감하며 판소리로 시대를 호흡했던 명창이 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바로 그해, 세상을 떠난 박동진 명창이다. 선생의 이름을 알린 것은 1968년에 연 여섯 시간짜리 흥부가 완창회.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판소리를 주목했을까 싶지만, 선생은 이후 1, 혹은 2년 사이에 완창회를 이어 가면서 끝내 다섯 바탕 전통 판소리를 완주했다.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선생의 노력은 창작판소리로도 이어졌다. 종교와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판소리를 만들어 시대와 호흡한 것은 판소리를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선생의 분투였다.

올해 세계유산 등재 20주년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작업이 활발하다. 전통 판소리도 그렇고 새로운 형식으로 기획된 실험적인 무대의 행렬도 반갑다. 모두 판소리 보존과 대중화를 위한 여정일 터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그 길은 멀어 보인다. 모든 장르가 혼재된 문화충돌의 시대, 판소리가 보존의 경계를 딛고 시대의 음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일. 이제 더 무거운 과제가 됐다. /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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