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중 일부를 변조한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해 온 '도해파(渡海破)'가 아닌 '입공우(入貢于)'가 원래 글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전북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제10기 1학기 6강이 지난 25일 오후 7시 전북일보사 2층 우석대 공자아카데미 중국문화관 화하관에서 열렸다. 강연자로는 김병기 서예가가 나서 광개토대왕릉비의 진실과 일본·중국의 속셈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서예가는 수십 년간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변조에 대해 연구하면서 찾은 사실을 공유했다. 광개토대왕릉비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변조 근거까지 설명했다.
그는 "1980년대에 대만 유학 당시 유명한 책방 골목에 가서 우연히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엮은 책을 발견했다. 필체가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우리 민족 고유의 미감을 살린 것이라는 생각에 춤추듯이 필사했다"며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필사하던 때를 회상했다.
김 서예가는 한참 쓰다 한 단어에서 붓이 막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또 필사하자 동일한 단어에서 붓이 막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단어가 변조된 단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수십 년간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변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필적 감정에도 일가견이 있던 김 서예가는 수십 년의 연구 끝에 변조 근거까지 찾았다.
그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특징은 간략화된 직선, 꾸밈없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큰 차이 없어 보이지만 가로 수평, 세로 수직이 완전히 일치하는 형태다. 변조한 단어는 당시 유행했던 필기체와 유사했고 수평 수직도 맞지 않는 부분이 다수 있었다"며 변조 근거를 밝혔다.
김 서예가가 발견한 원래 비문은 '도해파'가 아닌 '입공우'였다. 그는 "변조된 '도해파'를 넣어 해석하면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속국 백성)이었고 백제와 신라를 깨부숴서 일본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래 비문인 '입공우'를 넣으면 일본이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신라에 대해 조공을 들이기 시작했으므로 고구려는 왜도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된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광개토대왕릉비 변조 사실이 드러나고 김 서예가의 주장이 정확하게 들어맞자 수강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 서예가는 부안 출신이다. 1984년 국립공주사범대학에 부임하고 1988년에 '황정견의 시와 서예에 대한 연구'로 대만의 중국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전북대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후 3년 전 퇴직했다. 서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 서예학회장, 한국중국문화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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