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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화장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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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문화라는 말을 여기저기 가져다 쓰면서도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적 요소와 어울려 쓰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오늘 주제인 ‘이것’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 주저하는 바가 적지 않았는데 이 또한 문화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다. 

1993년 예술의 전당 개관식 즈음, 조간지 칼럼에 화장실 관련 글이 실렸다. 여성기고가는 여자 화장실 칸수가 적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작파하고 이를 우려했는데 연주회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을 찾은 여성 관객들이 크게 불편을 겪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칼럼을 읽고 화장실 문화를 지적한 기고자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던 것이 생각난다. 공연장의 화장실 상황은 개선되었겠으나 주변에서도 여성 화장실 칸수가 적어서 당황한 일을 적잖이 경험했을 것이다. 

내 경우도 난감한 상황이 있었다. 회사 상사들을 모시고 서울 출장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잠시 들렀다. 일행 네 분은 남성이었고 여자는 나 혼자였다. 하필 그 시각 관광버스가 들이닥치더니 여자 화장실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남자분들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는데 나 혼자 여자 화장실 긴 줄에 갇혀서 전전긍긍했던 일을 떠올리면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낯 뜨겁다. 이것도 경험인지라, 이후에는 눈치껏 화장실을 사용하는 요령이 생기긴 했다. 

최근에 아들로부터 들은 얘긴데, 어느 휴게실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볼 일이 너무 급한 나머지 남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자 화장실은 길게 줄을 섰고 남자 화장실은 여유 있게 비어있으니 급한 대로 남자 화장실로 뛰어간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유럽의 화장실이 생각났다. 남녀 구분 없이 줄을 서서 화장실이 비는 순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 경험에 실용적이지만 그다지 위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급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미덕도 화장실 문화일 것이다. 

인식이 개선되면서 여성 화장실 칸수도 늘어나고 장애인, 가족 화장실도 잘 운영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공공시설 화장실은 아쉬움이 많다.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 여자 화장실의 경우 화장실의 전체 면적은 넓은데, 정작 화장실 내부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캐리어와 같은 부피가 큰 짐을 소지한 승객이 이용하기에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개선되면 좋겠다.

대학교, 관공서의 경우 기존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하는 곳이 꽤 늘었다. 위생적이고 편리해서 반기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했을 때 내부 면적은 같은데 실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양변기가 떡하니 공간을 차지한 곳에서, 정작 사용자는 몸을 그로테스크하게 꼬아서 협소한 공간에 구겨 넣어야 하는 비참한 심정은 나같이 덩치가 큰 사람만의 비애일까. 

칭찬하고 싶은 화장실도 있다. 전주에서 익산으로 출근하면서 21번 국도 공덕교차로 졸음 쉼터를 애용한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잦은 사고로 정체가 심한 도로여서 예상보다 출근길이 길어지곤 하는데, 쉼터에서 잠깐 바람도 쐬면서 컨디션 조절하기 좋은 곳이다.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화장실은 죄가 없다. 화장실을 만든 사람의 생각,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가 화장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께 더욱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인사를 한다. 화장실 문짝 함부로 여닫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더 문화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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